[신문과 놀자!/과학이 보이는 CSI]옷의 섬유만으로 뺑소니 사건을 해결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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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그동안 과학 수사에 대한 NIE를 열심히 읽고, 공부하던 A 군은 미래에 과학수사대(CSI) 요원이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꿈을 갖게 되니 신문에 보도되는 사건을 보면 본인이 CSI 요원이 된 것처럼 책을 찾아보고, 인터넷 검색을 하며 열심히 과학 수사 공부를 하게 됐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물질로 범인을 잡는 수사 기술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기술은 1910년 프랑스 리옹에 처음으로 과학수사연구소를 설립한 에드몽 로카르 박사가 발견한 것이다. 물체와 물체가 접촉하면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남긴다는 원리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했다.

 자료를 찾다 보니 범죄 증거물로는 칼, 총 같은 물건도 있지만 범인의 머리카락이나 옷의 섬유, 범인 신발의 흙 등 범인도 모르게 떨어지는 작은 물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범인이 피해자를 만났고, 다툼이 있었다면 범인 옷에는 피해자의 머리카락, 피해자 옷의 섬유가 묻어 있을 것이고, 피해자에게나 범죄 현장에는 범인이 떨어뜨리고 간 머리카락, 옷의 섬유 등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증거물을 미세 증거물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가벼운 접촉이나 정전기로 쉽게 옮겨질 수 있는 섬유와, 깨어지면 조각이 나서 쉽게 옮겨지는 유리, 강한 충격이나 마찰에 의해 옮겨지는 페인트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 섬유 한 올로 뺑소니 사건의 범인을 잡는다

 A 군은 먼저 섬유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섬유 올을 꼬아서 만든 옷감은 면, 마, 실크, 양모 같은 천연섬유, 나일론, 폴리에틸렌 같은 인공섬유가 있고. 천연섬유에도 목화, 모시와 같은 식물에서 얻는 것과 양털에서 얻는 모섬유, 광물에서 얻는 유리섬유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이어 A 군은 섬유로 실험하는 과정을 알아봤다. 섬유와 같은 미세한 증거물은 먼저 섬유의 색을 확인하고 천연섬유인지, 동물의 털로 만든 섬유인지, 인공섬유인지를 밝힌다고 한다. 섬유를 태워 타는 과정, 냄새, 화염의 색을 보고 천연섬유인지 인공섬유인지를 확인한다는 것. 하나하나의 섬유 올은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지만 현미경으로 확대하면 볼 수 있어 현미경 검사를 한다고 한다. 섬유를 50배, 100배로 확대해 섬유 올의 표면을 보면 면섬유는 가늘고 평탄한 표면이 관찰되고, 마섬유는 굵고 거친 표면이 보이고, 인공섬유 계통은 아주 매끄러운 표면이 보여 구별이 된다. 또 양모의 표면은 비늘 같은 띠를 두르고 있어 다른 섬유와 쉽게 구별이 되는 것도 알게 됐다. 이 외에도 섬유 올의 성분을 측정할 때는 ‘적외선 분광기’란 기계를 사용하는 사실도 배웠다.


○ 차량에 붙은 섬유 한 올로 범인을 잡았다


 공부를 마친 A 군은 실제 섬유가 활용된 사건을 알고 싶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박모 박사를 찾았다. 박 박사는 옷은 사람들이 항상 입고 다니기 때문에 내가 상대방의 옷을 만지거나 옷과 옷이 접촉되면 상대방 옷의 섬유가 묻어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섬유가 옷에서 떨어지므로 섬유 한 올이 범인을 찾게 한다고 했다. 피해자와 범인이 싸웠거나, 피해자가 다툼 후 살해당했을 경우 피해자의 손톱 속에 있는 용의자의 옷 섬유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 실마리가 된다고 했다.

 이렇게 작은 물질을 어떻게 채취할까 물어보니 범죄 현장에서 손으로 집을 수 없어 투명테이프나 진공청소기를 이용해서 채취하며, 자외선이나 적외선을 이용한 장비를 이용해 찾는다고 설명해 주었다.

 A 군은 섬유로 해결된 다른 사건이 있는지 물어봤다. 박 박사는 경기 군포시의 빌딩 주차장 입구에서 폐휴지를 수거하던 할머니가 중상을 입고 쓰러진 채 발견돼 치료를 받았지만 사망한 사건을 말해 주었다.

 할머니는 다리와 어깨 등에 골절상이 심했는데, 사건 장소가 주차장 출입구로 한적한 곳이라서 경찰은 뺑소니 사건으로 추정하고, 그 시간 그 건물을 출입했던 용의 차량을 지목해 국과수에 의뢰했다. 박 박사는 용의 차량을 확대경으로 정밀 관찰한 결과 차량 아래쪽 부분과 번호판 뒤편에서 미세한 갈색 섬유가 발견됐는데 이 갈색 섬유는 피해자인 할머니가 입고 있던 바지의 섬유와 같은 아크릴계 섬유라는 게 확인돼 도망간 뺑소니범을 잡았다고 했다.

 또 인천에서 길에 쓰러진 여학생이 사망한 사건도 얘기해 주었다. 주변을 지났던 차량을 추적해 의심이 가는 택시의 앞면, 옆면, 뒷면을 조사했으나 사람과 충돌한 흔적이 보이지 않아 차량 아래쪽 전체를 1주일 이상 집중 조사했다는 것. 투명 테이프로 일일이 차량 아래쪽 전체를 다 찍어 가며 관찰한 결과 가장 뒷부분에서 청색 모직섬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면섬유는 흔하지만 모직섬유는 아주 드물고 이 청색 모직섬유가 사망한 여학생의 스커트 섬유와 일치해 택시 운전사를 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뺑소니 사고는 양심을 속이는 아주 나쁜 범죄에 속하는데 범인이 사고의 증거물이 될 만한 모든 것을 없애기 때문에 용의 차량을 발견해도 범죄를 증명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건 차량에 붙은 미세한 섬유는 눈으로 잘 보이지 않다 보니 범인에 의해 제거되지 않고 차량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 사건 해결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에드몽 로카르(Edmond Locard): 프랑스의 범죄학자로 법과학의 창시자 또는 프랑스의 셜록 홈스로 알려져 있다. 의학과 법을 공부하고 세계 최초로 1910년 리옹경찰국에 범죄 실험실을 설치했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Every contact leaves a trace)’는 로카르 교환법칙이 수사의 명언이 되고 있다.

정희선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원장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
#섬유#뺑소니 사건#에드몽 로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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