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국민의 5대 의무 결혼·출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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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괜찮았어?” “생각보다. 당신은?” “나도.” 내일 헤어지는 부부의 대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사무적이다. 하지만 ‘기간제 배우자’와 계약기간이 끝나 심드렁하게 평가하는 말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이 대화가 나오는 김려령의 소설 ‘트렁크’는 결혼정보회사 W&L의 VIP 전담 부서를 다룬다. 이곳은 싱글 남녀에게 한시적 배우자를 공급하는 비밀 부서다. ‘현장 아내(Field Wife)’가 덜컥 임신을 하고 낳겠다고 고집까지 부리면 퇴사가 기본이다. 주인공은 입사를 제안받고는 ‘이제는 배우자도 임대하는 세상이 됐구나’라고 중얼거린다.

 ▷통계청은 올해 결혼 건수가 40년 만에 처음으로 30만 건을 밑돌 것으로 예상했다. 1977년에 30만3156쌍이 결혼에 골인했고 지난해에는 30만2828쌍이 백년해로를 약속했다. 같은 기간 합계출산율은 2.99명에서 1.24명으로 추락했다. 1980년대만 해도 ‘신혼부부 첫 약속은 웃으면서 가족계획’이라는 표어가 대세였다. 결혼적령기 남녀가 줄어들고 출산은 더 감소하고 있는 우리 현실은 국가의 존속 가능성이 염려될 정도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가치관이 지배하던 시절에 결혼하려면 중매(仲媒)가 필요했다. 이 집 저 집 드나들며 선남선녀의 정보를 얻는 데는 출입이 자유로운 상민 출신 여자들이 적격이었다. 중매꾼 중매쟁이같이 낮춰 보는 표현이 나온 배경인 셈이다. 매파(媒婆)도 중매가 직업인 나이 지긋한 여인을 말한다. 부유층 자제나 고소득 전문직을 소개하는 ‘마담뚜’에서 ‘뚜’는 뚜쟁이의 첫 글자다. 뚜쟁이는 남녀의 야합을 주선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일본은 결혼율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나서고 있다. 히로시마(廣島) 현은 주민 모두가 중매꾼이 되자는 ‘사랑의 끈 프로젝트’ 등의 노력으로 출산율을 2005년 1.34명에서 작년 1.57명으로 늘렸다. 한국에서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출산율이 좀체 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국방 납세 근로 교육 등 국민의 4대 의무에 결혼·출산을 보태 5대 의무로 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결혼#김려령#트렁크#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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