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훈]공든 탑은 무너뜨리지 말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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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소비자경제부 차장
김상훈 소비자경제부 차장
 보건복지부에 출입하면서 의학, 제약 분야를 취재하던 10년도 훨씬 더 전의 일이다. 그때만 해도 한국 제약기업들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았다. 대단한 ‘혁신 신약’은 없었고, 매출 1조 원이 넘는 업체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국내 제약사들은 대부분 복제약을 제조하거나 외국 약을 수입해 팔았다. 그래서 스스로를 ‘구멍가게’라 불렀다. 성장보다 생존을 더 걱정하는 제약업체가 많았다.

 당시 한미약품과 관련해 한창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았다. “한미약품이 곧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이유를 묻자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코딱지만 한 제약사가 ‘오리지널 신약’을 개발하겠다며 연구개발(R&D)에 미친 듯이 투자하는 건 격에 맞지 않는다는 비아냥거림이었다.

 이런 예측은 틀렸다. 한미약품은 꿋꿋하게 R&D에 투자해 왔고 지난해에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5조 원대의 당뇨병 치료제 기술을 글로벌 제약회사 사노피에 수출한 것을 비롯해 총 8조 원의 기술 수출에 성공했다. 한미약품에 대한 뒷공론은 싹 사라졌다. “한미약품이야말로 제약업계의 삼성”이란 말까지 나왔다.

 올해 1월 한미약품 임직원들은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았다. 임성기 회장이 1100억 원대의 개인 주식을 전 직원에게 무상으로 나눠준 것이다. 모든 제약사의 부러움을 산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한미약품은 기업 성장으로 주가가 오르고, 그 과실을 직원이 나눠 갖는 바람직한 모델로 여겨졌다.

 그랬던 한미약품이 최근 위기에 빠졌다. 늑장 공시로 시작된 이른바 ‘한미 사태’의 여파가 심상찮다. 증시의 작전세력이 끼었고, 심지어 한미약품 내부자가 개입했을 것이란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충분히 이런 의심을 살 만하다. 지난달 30일 베링거인겔하임과의 기술수출 계약 해지를 한미약품이 공시하기 전에 “곧 악재 공시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는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주가 하락을 예상한 10만4327주의 공매도가 나왔고, 이 중 절반가량인 5만471주는 개장 이후 악재가 공시된 오전 9시 29분까지 나왔다.

 금융당국은 당장 조사에 착수했다. 만약 한미약품의 모럴해저드가 드러난다면 당연히 일벌백계해야 한다. 최근 과도할 정도로 주목받다 보니 제약업체 주변에 작전세력이 꾄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업계 전체가 모럴해저드에 빠질 우려가 작지 않았다. 실제로 “제약업체들이 배가 불러 ‘먹튀’하려고 한다”는 식의 음해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다 모처럼 기지개를 켠 바이오 제약 산업이 추락할까 봐 염려스럽다.

 그렇지 않아도 제약업계는 혼란스럽다. 대박 신화의 주역인 한미약품의 수출계약 취소 자체가 충격이었다. 글로벌 신약을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는 분위기다. 벌써부터 R&D 투자를 계속 늘려야 하는지 고민하는 기업들이 나오고 있다. 4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문제가 된 한미약품의 신약 올리타의 처방을 다시 허용하기로 한 점은 그동안의 신약 개발 노력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다른 치료제가 없는 말기 폐암 환자들을 위해서도 적절한 조치였다. 

 국내 제약업계가 글로벌 기업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우직하게 R&D에 몰두했기 때문이었다. 철저히 조사하되 격려도 잊지 말아야 한다. 10여 년 전의 암흑으로 돌아갈 순 없지 않은가. 그토록 공들여 쌓은 탑을 우리 스스로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김상훈 소비자경제부 차장 corekim@donga.com
#보건복지부#제약기업#한미약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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