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과학이 보이는 CSI]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범인, 어떻게 잡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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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회로(CC)TV의 힘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A 군은 범죄 해결에 폐쇄회로(CC)TV가 어떻게 활용되는지가 늘 궁금했습니다. 최근 입양한 여섯 살 된 딸을 살해한 뒤 시신을 불태워 암매장한 혐의로 체포된 양부모 사건에서도 CCTV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양부모는 “축제에 갔다가 딸을 잃어버렸다”고 말했지만 딸은 축제 현장에 가지 않은 것이 CCTV를 통해 밝혀진 겁니다. A 군은 얼마 전 공공기관이 공개된 장소에 설치한 CCTV가 73만 대(2015년)를 넘어 범죄예방, 화재예방, 교통단속, 교통정보 수집 등에 쓰인다고 한 기사가 떠오르자 CCTV에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범인들이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찾을 때는 마스크와 모자를 써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는 어떻게 범인을 찾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디지털분석과로부터 그 답을 하나씩 들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빼내 간 범인 사진을 보니 어둡고 흐릿했습니다. 연구원들은 얼굴을 밝게 하고, 흐린 영상을 선명하게 만들어 나갔습니다. 영상을 여러 가지 색으로 분해한 다음 필요 없는 부분은 제거하고 얼굴 등 중요한 부분을 강조한 다음 색을 넣는 방법이었습니다.

 A 군은 범인이 차량을 타고 빠르게 달아날 때 어떻게 차 번호판을 판독하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우리가 안경을 쓰는 것과 똑같은 원리라고 했습니다. 흐려진 영상을 선명하게 다시 만들어 놓으려면 영상을 예측하여 알맞은 도수를 적용하면 원래대로 영상이 복원된다고 합니다. 물론 영상을 예측하고 알맞은 도수를 계산하는 것은 어려운 과정입니다. 또 옆으로 찍힌 자동차 번호판도 분석할 수 있습니다. 평면에서 선이 끝까지 가면 한 점으로 모이는 소멸점 원리를 이용하여 원래의 형태를 예측하는 겁니다.

 과학수사 분야에서 영상 복원은 흐릿한 비디오 장면이나 사진을 잘 보이게 하거나 특정 부분만 확대해 범죄 해결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합니다. 디지털 영상 기술이 아주 빠르게 발전해 원본 이미지를 보존할 수 있으며, 보존된 영상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쉽게 재현할 수 있고, 색 분해와 주파수 분석, 노이즈 제거 등을 통해 영상을 더 선명하고 정확하게 복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범죄 사실을 감추기 위해 영상물을 위조했거나 편집하는 경우도 있는데 영상 분석으로 위조, 편집 여부를 밝힐 수 있죠. 영상 처리 기술은 전자공학, 컴퓨터공학, 응용물리학, 화학공학 등 여러 학문 분야가 다양하게 협업해 활용도가 증대되고 있어요. 의료 분야에서는 X선 사진, 컴퓨터단층촬영(CT) 사진 등 의료용 영상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화질을 개선하거나 색상을 첨가해 물체의 상을 선명하게 하여 환자의 질병 진단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CCTV는 범인 인식과 범죄 상황 설명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영상 분석은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 같은 강력 사건에서 큰 활약을 했습니다. 강호순 사건에서는 범인을 찾기 위해 보건소 앞을 지난 수천 대의 차량을 CCTV로 분석해 차종을 밝히고, 이어 수 km 밖에 설치된 교통정보 수집 CCTV에서 차량 번호를 확인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습니다. 또한 일본 관광객들이 사망한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 사건에서는 화재로 내부가 전소돼 발화 장소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화재로 멈춘 CCTV에서 정전 18초 전 분량의 녹화 영상을 재생해냈습니다. 이를 통해 발화 지점을 특정해서 화재 원인을 규명해 낸 거죠. 인천에서 일어난 모자 살해 사건에서는 용의자인 둘째 아들이 탄 차가 찍힌 CCTV 영상 분석을 통해 차체에 두 사람의 몸무게에 해당하는 약 125kg의 무게가 더 실렸을 것으로 분석해 트렁크에 시신이 실린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부산에서 2010년 여자 중학생이 납치된 후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영상 분석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범인을 잡지 못해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난 후 여중생 시신이 물탱크에서 발견됐는데 경찰의 공개수사 때문에 범인이 심적 압박을 느껴 여중생이 희생됐다는 여론이 일면서 피해자의 사망 시점을 밝히는 것이 중요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마침 여학생이 실종된 뒤 비공개 수사를 하면서 이 일대를 수색하던 경찰이 찍은 물탱크 주변의 사진에서 대야와 바가지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신을 발견한 3월 6일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에도 대야와 바가지가 있었거든요. 대야와 바가지에는 시신을 은폐하기 위해 사용한 석회가루가 묻어 있었는데 만약 대야와 바가지를 공개 수배일인 2월 27일 이전에 사용하고 그 이후에는 사용하지 않았다면 변화가 없을 것이고, 27일 이후에 사용하였다면 대야와 바가지에 변화가 있었겠죠. 그래서 2월 26일 사진과 3월 6일 사진을 비교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현장에서 스캔해 구성한 3차원 형상 위에 첫 번째 사진을 입혀 새로운 3차원 영상을 만들었고, 이 영상의 각도를 돌려 두 번째 사진이 촬영된 각도와 동일 여부를 실험하였습니다. 감정 결과 두 사진에서 보이는 대야의 위치나 석회가루의 흐른 자국 등이 동일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었죠. 즉 대야와 바가지는 26일 이전에 사용했다는 것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이후 검거된 범인 김길태가 여중생을 실종일(24일) 밤에 살해했다고 자백했습니다. 2장의 사진이 사망 시점을 알려주는 증거로 새삼 과학의 힘을 느끼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정희선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
#마스크#범인#c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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