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톡톡 TALK TALK]단체 술자리, “No!” 하다가도 즐기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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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직장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회식. 직장인 10명 중 6명이 회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한국 특유의 회식 문화는 불만을 낳기도 하지만 장점도 있습니다. 회식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폭탄주, 꼭 마셔야 하나요

“2, 3일 전 갑자기 회식을 공지하면 당황스럽죠. 갑작스러운 회식 때문에 서너 달 전부터 잡힌 동창회를 못 갔어요. 선약이 있다고 당당히 회식을 빠지긴 아무래도 어렵죠.”―전모 씨(32·건설회사 직원)

“한국 문화 중 가장 색달랐던 게 바로 회식 문화예요. 회식이란 단어를 영어로 번역할 수가 없어요. 서양 사회에서는 회사에서 진행하는 공식 저녁식사가 없거든요. 제가 미혼일 때는 회식이 마냥 재밌었지만, 결혼하고 나이도 드니 부담되네요. 참여 여부나 음주, 메뉴 등에서 선택권도 별로 없고요.”―브라이언 베츠 씨(31·초등학교 교사)

“과장님이 모든 직원에게 폭탄주를 돌리는 걸 보고 충격이었어요. 이 사람은 뭘 잘해서 주고, 저 사람은 뭘 잘해서 주고…. 그 폭탄주를 마시고 싶어 하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거든요. 강압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김모 씨(25·호텔 조리사)

“전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어서 독한 술을 못 먹어요. 다른 부서 사람들과 술 마시는데, 혼자 빠지면 안 된다며 술을 마시라 해서 어쩔 수 없이 먹었어요. 그런데 결국 가벼운 마비가 와서 구급차를 부를 뻔했어요.”―정선영 씨(39·게임 디자이너)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오니 대학 회식 자리에서 한국 특유의 선후배 문화에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반찬이 없으면 후배들이 알아서 가져오고, 숟가락 젓가락 놔 주고, 물 따라주는 거요. 알아서 가져와야 하는 거죠.”―이정윤 씨(27·대학생)

“회식 때 건배사 제의가 힘들어요. 건배사들이 대부분 비슷한데 생각해 둔 말을 앞에서 누군가 하면 급히 다른 말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먼저 할수록 편하긴 한데 먼저 할수록 높은 사람 옆에 앉아 있다는 거니까 뭔가를 버리는 대신 뭔가를 얻는 거죠.”―전모 씨(32·건설회사 직원)
 
분위기 메이커는 상사
 
“사장님이 술 마시며 일본에서 우리 회사 게임이 팔리면 좋겠다고 말했죠. 국내 게임의 해외 진출이 드물 때였는데 전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향점이 생겼죠.”―정선영 씨(39·게임 디자이너)

“모두가 참여하길 권하다 보니 소외되는 사람은 없어요. 윗사람들도 ‘요즘 뭐가 힘드냐’며 한마디라도 더 묻고요. 서로 더 의지하게 되죠.”―조영탁 씨(28·영업사원)

“저희 대표님은 회식 때 춤추고 노래 부르며 분위기를 띄워요. 출근 첫날부터 회식해 불편했는데,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걸 보고 좋다는 생각이 들었죠.”―전광숙 씨(54·부동산 회사 직원)
“회식으로 만취한 직원이 다쳐서 병문안을 간 적이 있고, 단골집에서 신입사원이 토한 적도 있고…. 그러면 다음 날 선배한테
미안해서 더 잘하게 되잖아요. 선배의 노하우를 나눌 마음도 들고요. 절로 친해지죠.”―강모 씨(50·자영업자)

“통장을 하다가 5년 전 그만뒀죠. 함께했던 통장들과 아직도 회식해요. 40년은 넘었죠. 매일 탁구와 게이트볼도 쳐요. 애경사를 챙겨 주는 인생 친구죠.”―김성규 씨(80·퇴직자)
 
하는 일 따라 다른 회식
 

“학교에 방글라데시 연구원들이 있어요. 힌두교 이슬람교라
돼지고기 쇠고기를 못 먹어요. 해산물은 괜찮대요. 한번은 중국집에서 말린 해파리가 들어간 팔보채를 시켰는데 고기가 섞여 있었죠.
연구원들이 그걸 먹고 토하더니 곧장 기도를 하더라고요.”―이슬기 씨(24·대학생)

“영화 촬영하면 회식이 정말
많아요. 크랭크인 전에 전체 회식, 촬영 중간에 제작사·투자자 대표, 주연 배우가 크게 쏘는 회식, 쫑파티까지 많죠. 처음엔
배우들과 술 마시는 재미에 반쯤 호기심에서 이 일을 시작했죠. 배우들의 인간적 면모도 보고요. 영화는 긴 프로젝트라 작품 하나
끝내면 스태프끼리 형 동생하게 되죠. 의리가 남아 있어요.”―송진혁 씨(51·영상 녹음감독)

“노숙인 자활 지원
잡지인 ‘빅이슈’를 팔고 있어요. 최근 제가 임대주택에 입주하자 저희 집에서 잡지를 함께 파는 동료 8명이 집들이 겸 회식을
했죠. 저희는 매주 한 차례 이렇게 회식하지만 경제적 부담도 있어서 2시간 정도 하고 끝내요. 저희는 따로 놀러가는 일은 없으니
그게 유일한 친목활동이네요.”―김형철 씨(61·빅이슈 판매원)
 
‘평범한 회식’은 없나요
 
“3교대로 근무해요. 나이트 근무는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죠. 마치고 회식 해 봤자 24시간 순댓국집에서 1∼2시간 술 마시는 게 전부죠. 그 시간에 버스 타면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요. 아침부터 술 냄새를 풍기니까요. 억울해요.”―이병걸 씨(33·간호사)

“보디빌딩 대회 준비할 때엔 술도
고기도 안 먹고 철저히 식단 관리를 해요. 회식에도 못 가죠. 다들 ‘힘들지’라고 한마디 던지고 회식에 가죠. 항상 한두 명쯤은
대회를 준비하니 익숙한 거죠. 하지만 당사자는 서운하죠.”―차서은 씨(28·전직 트레이너)

“아이를 낳고 프리랜서로
전향했어요. 회식을 하고 싶어도 못 하죠. 부모님께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서. 아이가 초등학생이 될 때까진 직장에 못
돌아가요. 회식하던 직장인 시절이 그립네요.”―정선영 씨(39·게임 디자이너)

“일할 시간을 빼서 회식해야 하다 보니 자주 못해요. 매일 야근할 정도로 바쁘거든요. 분기에 한 번씩 하는 대신 거하게 하죠. 좋은 동네에 가서 회식하는데 1인당 5만 원의 예산을 잡아요.”―남모 씨(27·전자회사 직원)
 
서로를 알아가는 자리
 
“저흰 회식 때 뮤지컬을 봐요. 제 돈 내고 뮤지컬 보기엔 비싸잖아요. 회사 돈으로 뮤지컬 본다는 생각에 회식을 좋아해요. 회식 대신 떡볶이 투어를 가기도 하죠.”―정모 씨(36·어린이집 교사)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회식을 일부러 안 해요. 회식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거든요. 한 달에 한 번 점심만 같이
먹는 정도예요. 다들 개인 생활을 중요시하고, 함께 저녁식사 하는 자리는 싫어해요. 회식은 단합하는 자리라기보다는 서로 알아가는
자리라 생각해요. 전 회식을 직원들에게 맛있는 걸 사주는 자리로 생각해요. 삼겹살에 소주 마시기보다는 좋은 데 가서 좋은 걸
경험하려 하죠. 그러면 직원들이 알아서 술술 자기 이야기를 해요. 오히려 직원들이 먼저 뭔가 먹고 싶다고 회식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어요.”―김광섭 씨(48·벤처기업 대표)

“회식으로 ‘방 탈출 카페’에 갔었어요. 평소 소원했던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며 관계도 좋아졌고 다른 조와 경쟁하며 하니 더 재밌었어요. 제가 제안했는데, 지금까지 했던 워크숍 중 최고였다 해서 기분도
좋았네요. 그 뒤 식사 자리에선 서로 이야깃거리도 풍부했죠.”―조향원 씨(33·회사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어둠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친밀감이 형성돼서 기업 단위로 많이 와요. 어둠 속에서는 대화를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상태도 모르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니까 자꾸 말을 걸게 돼요. 목소리에 집중하게 되고, 상대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죠.”―조정화 씨(40·엔비전스 어둠속의대화 팀장)

“젊은 직장인들은 개인 생활을 중시하지요. 회식에 대한 생각을 묻는 설문에서도 이들이 회식에 불만을 갖는 이유가 ‘개인 일정을 무시한 회식 통보’가 가장 높았습니다.”―변지성 씨(40·잡코리아 팀장)

오피니언팀 종합·조혜리 인턴기자 성균관대 의상학과 4학년  
#회식#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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