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로변은 빌라신축 붐… 낡은 기존 주택가는 슬럼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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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뉴타운 해제 뒤 후속대책 없어… 목좋은 도로주변 난개발 몸살
30년 넘은 ‘연립’ 등은 파손 방치

“2년 전부터 동네가 빌라 공사판이 됐어. 좋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다 팔고 나갔지만 남은 주민들은 죽을 맛이야….” 12일 서울 영등포구 도신로 근처의 한 주택가에서 만난 주민 신모 씨(56·여)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말했다. 바로 옆에선 차량 두 대가 지나가기 어려운 좁은 길 양쪽으로 빌라 공사가 한창이었다. 각종 건축자재들이 차도를 침범한 채 사람 키 높이로 쌓여 있었다.

이곳은 2004년부터 재개발이 추진돼 온 뉴타운 신길2구역. 그러나 2014년 지정이 해제되면서 동네가 쪼개졌다. 해제를 원했던 대로(大路) 근처 땅주인들은 서둘러 동네를 떴다. 그 자리에는 곧 새 빌라들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100여 m 거리 내 빌라 21채 중 절반 가까이가 최근 새로 지었거나 공사 중이었다. 반대로 주택가 안쪽의 주민들은 거대한 공사판으로 바뀐 골목길을 오가며 낡은 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30년 전 세워진 붉은 벽돌의 연립주택들은 담벼락 곳곳이 파손됐고 일부 주택은 버려진 채 방치돼 있다. 근처 한 부동산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동네 전체를 싹 정비하려던 계획이 사라지면서 정작 개발이 필요한 안쪽 구역은 차량도 제대로 드나들지 못하는 상태로 슬럼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뉴타운 지정이 해제된 서울 신길2구역(위 사진)과 장위12구역의 모습. 노후 주택이 방치돼 있거나 신축 빌라의 건축자재가 좁은 도로를 차지하고 있다. 김정현 인턴기자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4학년
2014년 뉴타운 지정이 해제된 서울 신길2구역(위 사진)과 장위12구역의 모습. 노후 주택이 방치돼 있거나 신축 빌라의 건축자재가 좁은 도로를 차지하고 있다. 김정현 인턴기자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4학년
신길2구역의 현실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 일성으로 추진한 ‘뉴타운 출구전략’의 이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박 시장은 2002년 시작된 전면 철거 방식의 뉴타운 재개발이 “원주민을 몰아내고 지역공동체를 붕괴시킨다”며 빠른 속도로 지정 해제를 진행했다. 동네마다 고유의 장점을 살리는 방식으로 정비하겠다는 취지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으로 전체 265개 사업구역 중 64곳에서 해제가 완료됐거나 예정돼 있다. 완공됐거나 착공에 들어간 구역이 71곳에 불과해 해제구역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해제’만 선행되고 ‘장점을 살리는 정비’가 뒤따르지 못하자 많은 지역에서 억눌렸던 개발 수요가 마구잡이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날 돌아본 성북구의 옛 장위12·13구역(2014년 지정 해제)의 난개발 상황은 더 열악했다. 주차 대책도 없이 80여 채의 빌라가 새로 지어졌고, 폭 4m의 골목길은 주차장으로 전락했다. 한 주민은 “불이 나도 소방차 한 대 제대로 못 들어올 처지”라며 “동네는 여전히 열악한데 신축 빌라들 때문에 지역 전체의 ‘노후도’가 떨어져 재개발을 다시 추진하기도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뉴타운 사업으로 들어설 예정이었던 주민복지시설 건립 계획도 대책 없이 물거품이 됐다.

서울시는 2014년 ‘서울형 도시재생 시범사업’을 시작하며 장위를 비롯한 일부 뉴타운 해제구역을 지원 대상에 포함했다. 10여 년간 제대로 정비되지 못한 낙후 지역의 가로 정비 등을 통해 생기를 불어넣을 계획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전혀 체감할 수 없다. 남은 건 뉴타운 매몰비용에 따른 압박뿐”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소규모 정비 지원으로 자발적 개선을 유도하는 한편 뉴타운 해제 지역 재생 모델 개발 대책도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김정현 인턴기자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4학년
#뉴타운#슬럼#주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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