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김중신]수능 앞두고 문제 유출, 평가원 책임 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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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신 한국어교육학회장 수원대 국문과 교수
김중신 한국어교육학회장 수원대 국문과 교수
수능이 문제다. 이번에는 복수 정답이 아니라 사전 유출이다. 수능 6월 모의시험에서 국어의 지문과 문제 유형이 미리 학원가에 떠돌았다고 한다. 예년에도 그런 의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유독 올해 문제가 되는 것은 지문 제시 방식이나 문제 유형이 예년과 사뭇 달라졌기 때문이다. 출제를 담당한 평가원으로서는 교육과정이 바뀌었으니 수능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한다.

그러나 수험생 입장은 좀 다르다. 정부의 EBS 연계 정책을 믿고 올 2월에 발행된 교재를 충실히 공부한 수험생들로서는 낯선 지문 제시 방식과 새로운 문제 유형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번 시험은 2005학년도 수능 이후 역대 최고로 어려웠다는 평을 받고 있다. 만점자 비율 또한 0.17%로 작년(A형 0.8%, B형 0.3%)에 비해 대폭 감소했다. 이런 낯선 유형이 9월 시험에도 출제된다면 수험생들은 EBS 교재를 집어던지고 새로운 유형의 문제를 찾아 교실 밖으로 나설 것이다.

수험생들이 수능 고사장에서 받는 정신적 부담은 상상을 초월한다. 국어의 경우 45개 문항을 80분 안에 풀어야 한다. 문제당 1분 30초인 셈이다. 지문이라도 걸려 있으면 고충은 더 가중된다. 하나의 지문은 대략 1300자에서 2000자 정도 된다. 한국인의 평균 독해 속도는 대략 1분에 600자 정도이다. 지문을 읽는 데만 2분 남짓을 쓰게 된다. 수험생으로서는 수능에 출제될 지문을 미리 안다는 것은 100m 달리기에서 30m 정도를 앞서 출발하는 것과 같다.

이번 유출 사태의 심각성은 지문의 내용을 넘어서 지문의 새로운 제시 방식, 문제의 새로운 유형까지 정확하게 짚어냈다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이번 6월 모의시험에서 EBS 연계 교재에서 다루지 않은 새로운 유형의 문제가 출제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진 것이다.

EBS 연계 정책은 ‘EBS 연계 교재’→‘6월과 9월 모의 수능’→‘11월 수능’이라는 흐름으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매해 초 EBS 연계 교재로 학습하고, 이를 통해 6월과 9월의 모의고사, 그리고 최종적으로 11월의 수능을 대비한다. 이번 사태는 평가원이 이 흐름을 깨뜨린 데서 비롯한 것이다.

평가원의 주장대로 올해 수능에 2009 교육과정을 반영하려면 매해 초에 발행되는 EBS 연계 교재에서 적용을 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6월 모의시험에 적용을 하니 수험생들은 낯선 문제에 당황하게 된다. 새로운 유형으로 출제를 한 후 감금에서 풀린 교사들도 입이 근질근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문 제시 방식과 문제 유형이 바뀐다는 사실을 미리 아는 것만으로도 진학 지도교사에게는 대단히 고급 정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평가원이 EBS 연계 교재의 감수 기관임을 잠시 망각한 것이다. 유의할 것은 이번 수능 유출 사건을 학원 강사와 교사의 부적절한 커넥션으로만 치부한다면 언제든지 유사한 사건이 재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정책이 그러하지만 특히 교육과 관련한 정책은 예측 가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중신 한국어교육학회장 수원대 국문과 교수
#6월 모의고사 유출#수능#수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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