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숭숭 뚫린 아동학대 방지 매뉴얼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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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가 “길에다 버렸다”던 ‘평택 실종 아동’ 원영이가 그제 주검으로 돌아왔다. 계모는 평소 원영이가 소변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때리고 굶기며 학대를 일삼다가 지난해 11월부터는 아이를 차가운 욕실에 가뒀다고 한다. 지난달 1일에도 아이에게 표백제와 찬물을 뿌려댄 계모는 다음 날 죽음을 확인하고 열흘간 시신을 베란다에 방치하다 암매장했다. 어린 자녀에게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 것인지 통탄스럽다.

원영이의 죽은 한이나마 풀어줄 수 있었던 것은 아이가 입학할 예정이었던 학교에서 발 빠르게 경찰에 신고를 한 덕분이었다. 교육부가 지난달 발표한 매뉴얼에 따르면 초등학교는 입학식 다음 날까지 미취학 아동 현황을 파악하고, 입학식 5일 이내에 소재가 파악되지 않으면 즉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학교가 주민센터에서 넘겨받은 취학 명부에는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만 있어 보호자의 연락처를 알 수 없다. 학교가 요청해도 주민센터가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자료 제공을 거부하면 알아낼 방법도 없다.

교육부는 매뉴얼을 발표하면서 부처 간 협조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했지만 개학 이후 열흘이 지나도록 달라진 게 없다. 일부 교육청에선 아직까지 미취학 현황을 집계하지 않는 등 늑장이다. 이래서야 아동학대에 대한 여론이 들끓고, 정부가 대책을 내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정부의 한가한 업무 대응 때문에 어디선가 희생당하는 또 다른 원영이가 나오면 어쩔 셈인가.

원영이는 계모의 학대로 사망했지만 아동학대의 80%는 친부모에 의해 이뤄진다. 원영이 남매는 계모의 학대를 피해 3개월간 평택 지역아동센터의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친부가 친권을 앞세워 남매를 데려간 뒤에는 아동센터도 손을 쓸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2013년 울산 초등생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특례법이 개정됐다지만 아동센터의 예산 인력 권한이 뒷받침돼야 할일을 다할 수 있다. 그런데도 2016년도 아동학대 예산안(185억6200만 원)은 2015년도보다 26.5% 삭감됐으니 제2, 제3의 원영이를 막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실종#아동학대#원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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