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명인열전]“건강하게 살고 싶으세요? 당장 주방의 양념을 버리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39> 자연음식연구가 김현희씨

김현희 씨는 자연 속에서 맛과 건강을 채취하는 자연음식 천연양념 연구가다. 김 씨가 천연양념 재료로 사용하는 말린 식재료를 설명하고 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김현희 씨는 자연 속에서 맛과 건강을 채취하는 자연음식 천연양념 연구가다. 김 씨가 천연양념 재료로 사용하는 말린 식재료를 설명하고 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당장 주방의 양념을 모두 버려라.”

자연음식연구가 김현희 씨(55·여·수향 자연식생활문화원장)는 “홍등가의 여인처럼 짙은 화장기로 범벅된 주방의 인공양념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대신 천연재료를 말린 가루나 전통 장류와 천연식초로 맛을 내자는 것이다. 식재료의 기운을 조정하고 해독과 소화를 돕는 촉매 역할 때문에 ‘약념(藥念)’으로 불렸던 양념은 이제 소위 ‘맛집의 비법’으로 바뀐 지 오래다. 상당수 맛집의 ‘며느리도 모르는 비밀’은 화학조미료와 물엿, 인공향신료 등임을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가정이나 음식점이 늘어나지만 공장에서 나온 장류와 식용유, 맛소금에는 온갖 화학첨가물과 인공색소가 이미 첨가돼 있다. 그녀가 생각하는 자연음식은 “지역에서 제철에 난 식재료를 활용해 먹는 사람의 체질과 건강 상태에 따라 잘 소화되도록 만든 음식”이다.

○자연에서 치유 받다

1997년 외환위기 무렵 경기도 한 시청의 구내식당을 운영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잔반(남은 음식) 줄이기 운동 등으로 환경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지만 ‘마음의 병’까지 깊어져 1999년 어머니의 고향인 전주로 내려왔다. 어머니는 당시 모악산 아래서 등산객을 상대로 보리밥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특별한 재료를 많이 넣지 않고도 맛을 내는 음식솜씨가 뛰어났다.

몸을 추스르기 위해 산과 절을 떠돌면서 풀꽃과 자연음식에 눈을 떴다. 2000년 모악산 아래에 풀꽃요리 전문점을 열었다. 아카시아 자운영 제비꽃 등 자연에서 채취한 꽃을 특제 소스에 비벼 먹는 꽃비빔밥과 진달래 화전, 접시꽃 튀김 등이 주 메뉴였다. ‘꽃을 어떻게 먹느냐’던 사람들도 다음에는 가족과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 된장과 간장을 직접 담그고 연근 멸치 새우 표고 돼지감자 호박씨 들깨 등 천연재료를 갈아 맛을 냈다. 누룩도 직접 만들고 엉겅퀴 보리 방아풀 등으로 천연식초도 만들었다. 소금은 금이 간 항아리에 1년 이상 보관해 독성을 뺐다. 간장 담글 때 중금속 해독제인 명감나무 뿌리를 삶아 소금물을 만들었고 된장에는 북어와 다시마를 넣어 소금이 직접 된장에 닿지 않도록 했다.

2007년 식당 문을 닫고 대중음식점과 농가식당 메뉴 컨설팅과 기술전수, 연구개발에 나섰다. 소상공인지원센터와 전북 완주 무주 진안군, 전남 순천 나주 등에서 음식점 상차림 컨설팅을 했다. ‘꽃차 꽃요리’(2005년·하남출판사·공저), ‘천연양념 216선’(2012년) 등 2권의 책도 펴냈다. 2013년 정읍시 감곡면에 정착해 힐링푸드센터를 열고 농민과 이주여성들을 상대로 전통음식 강의를 열고 자연음식을 전파한다. 이때부터 시작한 일이 ‘풀 농사짓기’와 ‘주방 양념 바꾸기’다. 엉겅퀴 진액을 추출해 만든 엉겅퀴된장으로 특허를 얻기도 했고 쇠비름과 개망초 등 잡초를 활용한 효소와 장아찌를 연구하고 있다.

“시골에 가면 지천에 널린 잡초가 좋은 식재료가 됩니다. 버릴 것이 없고 억지로 농약을 뿌려 죽일 필요도 없지요. 산야초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배워 가면서 자연도 살리고 소득도 올리는 길을 찾아 가야죠.”

○마름묵과 먹시감식초 ‘맛의 방주’에 등재

슬로푸드 한국협회 이사와 정읍시 지부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해 말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고산마을의 향토음식인 ‘마름묵’을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등재했다. 비정부기구(NGO)인 국제슬로푸드생물다양성재단이 인증하는 맛의 방주는 대량 생산과 세계화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토종 종자와 전통 음식을 보존하기 위한 사업이다. 맛의 방주 목록에는 현재 80여 개국 2700여 가지의 토종 종자와 음식이 올라 있다.

마름은 연못에 자생하는 한해살이 물풀로, 뿌리 부분에 밤 맛이 나는 열매가 달려 있다. 마름 열매는 예로부터 항암과 강장, 허약체질 개선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고산마을 주민들은 마을을 따라 흐르던 물길이나 방죽에서 흔히 자라던 마름의 열매를 따서 말려 가루를 낸 뒤 묵을 만들어 영양식으로 먹곤 했다. 주민들은 맛의 방주 등재를 계기로 마름 재배를 늘리고 다양한 음식을 개발해 슬로푸드 국제대회에 참가할 계획이다.

그는 2014년 10월에는 정읍시 산내면의 먹시(검은 반점이 있는 감)로 만든 감식초를 맛의 방주에 2000번째로 등재시켰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과 감식초지만 역사성이 있는 전통적 제조방법을 기록하고 지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스토리텔링과 선점효과를 노린 것이다. 정읍 자생 녹차도 맛의 방주 등재를 추진 중이다.


▼ 명아주고추장무침… 개망초볶음… 산야에 지천으로 널린 잡초는 최고의 힐링푸드 이자 천연양념 ▼


김현희 씨는 인터뷰 내내 눈물을 흘렸다. 부모의 이혼으로 시작된 불행부터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은 개인적 아픔까지 살아오면서 시련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젊은 시절부터 ‘마음의 병’을 오래 앓았던 그가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은 자연을 통해서였다. 자연에서 나온 음식을 통해 몸을 추슬렀고 세상에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 지금도 자주 인간관계 때문에 상처를 받지만 자연 속에서 위로받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의 꿈은 홀로 사는 아픈 여성들을 위한 공동체를 꾸미는 것이다. 이들이 자연음식을 먹도록 해 몸을 회복하고 이 음식을 활용해 자립의 기반도 함께 닦는다는 포부다.

그가 추천하는 힐링푸드와 천연양념은 뭘까. 그는 우리 산야에 널린 잡초를 식재료로 많이 활용한다. 명아주고추장무침은 5, 6월 밭에서 나는 풀인 명아주의 연한 잎을 따서 소금물에 데친 뒤 고추장 고춧가루 참기름 마늘 참깨를 넣어 조물조물 무친다. 비빔밥에 넣거나 밥반찬으로 먹으면 매콤하면서 고소하다. 명아주는 혈액순환에 좋고 염증 치료에도 효험이 있다.

개망초볶음은
6, 7월 개망초의 연한 잎을 따서 소금물에 데친 뒤 햇볕에 말려 손으로 비비기를 2, 3회 반복한다. 묵나물로 저장해 두었다가 꺼내 미지근한 물에 불려 삶아 씨간장과 들깻가루 된장 들기름을 넣고 무치면 된다. 천연양념으로는 쑥가루와 쑥소금을 강추한다. 쑥가루는 3월 말에서 4월 초에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연한 쑥을 뜯어 말려 만든 분말이다. 이 쑥가루를 저장해 놓고 된장국을 끓일 때 한 스푼 넣으면 연중 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전을 부치거나 수제비 칼국수 반죽을 할 때 넣으면 향도 좋고 음식의 색깔도 살아난다. 쑥소금은 쑥가루와 소금(천일염을 볶음)을 1 대 1 비율로 섞어 만든 향기로운 소금이다. 고기를 구울 때 이 소금을 뿌리거나 찍어 먹으면 고기의 잡스러운 냄새가 없어진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