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는 의료산업과 관련된 내용이 명시돼 있지 않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물론이고 보건의료 업계가 시끄럽다. ‘의료 민영화’와 ‘공공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 등 4개 단체가 최근 법안에 반대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낸 데 이어 야당이 법 시행 대상에서 의료 분야를 제외하는 대체 법안을 발의하며 정부와 날 선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주장이 맞는지 확인해봤다. ○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 ‘의료 영리화’가 있다?
야당 등 법안 반대 측에서는 “당정 및 여야 협의,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 등을 종합하면 의료는 사실상 핵심 타깃”이라고 주장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여당 간사인 강석훈 의원이 1월 국회 간담회에서 “(보건의료 부분을 빼자는 것은) 김치찌개에서 김치를 빼고 끓이자는 것”이라고 한 발언 등을 근거로 들고 있다. 컨트롤타워를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기획재정부에 설치하는 것도 그 포석이 아니냐는 것이다.
법안은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한 컨트롤타워(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 설치, 5년 단위의 기본계획 수립, 투자와 지원, 관련 규제 완화 등의 기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적용 대상은 제2조에서 ‘농림어업이나 제조업 등 재화생산 산업을 제외한 경제활동 관계산업’으로만 규정하고 있을 뿐 의료 분야는 명시되지도 않는다. 어떤 산업 분야이든 ‘서비스’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을 목표로 할 뿐 이를 곧바로 민영화나 영리화로 연계하는 것은 과도한 비약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 법안 통과로 공공의료 체계 무너지나
의료기관들이 산업화를 통한 돈벌이에 매달리면 병원비 폭등과 과잉 진료, 의료사고 증가, 질병 치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 등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반대 측은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의료 시스템 붕괴로 인한 피해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상의료운동본부의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의료기관의 영리 자회사 허용, 제주도 내 외국인 영리병원 승인, 건강 서비스 관련 규제 완화 등은 사실상 의료 민영화의 전 단계라고 본다”며 “이런 파상공세식 민영화 시도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으로 정점을 찍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 측이 주장하는 영리 병원은 의료체계를 규정하고 있는 의료법을 개정해야 설립할 수 있다. 현행 의료법은, 모든 의료법인은 영리를 추구할 수 없는 비영리 법인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 조항이 바뀌지 않으면 영리 병원은 설립될 수 없다. 보건복지부 방문규 차관은 “의료정책의 변경은 개별법 개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서비스산업발전법을 하나 만든다고 의료 영리화가 이뤄진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 의료 분야 제외하면 법안 통과될까
야당은 의료 분야를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면 법안 통과에 합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내용의 대체 법안을 낸 더불어민주당 김용익 의원 측은 “최대한 양보한 결과”라며 “정부 여당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건강보험 의무가입을 비롯한 현행 의료법 규정들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법안 적용 대상 중 의료 분야를 제외해도 의료 영리화를 막겠다는 반대 측의 목적 달성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의료관광 활성화와 국내 의료업계의 해외진출 확대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할 기회만 되레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안은 현재 국회 기재위 소위에 계류돼 있다. 4월 총선 전 마지막 ‘원포인트 국회’가 열릴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양측 입장이 팽팽해 처리될지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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