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999년 위작 수사… 남태령 고개서 되돌아간 ‘미인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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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에서 논란까지 ‘기구한 신세’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 보관돼 있던 ‘미인도’는 1999년 6월 서울 남태령을 지나고 있었다. 당시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가 고서화 위작범 권모 씨를 수사하다 그가 1991년 위작 논란이 제기된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위작했다고 자백하자 이에 관한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과천에서 서울지검으로 그림을 옮기는 중이었던 것.

권 씨의 자백 이후 미인도 위작 문제는 검찰 수뇌부에 즉각 보고됐고 수사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권 씨가 위작했다면 천 화백의 서명 부분을 위작한 사인위조죄가 적용되는데 당시에 이미 공소시효 3년이 지난 상태였다.

저작권 침해와 관련해서는 천 화백이 고소를 하면 수사가 진행될 수 있었지만 천 화백은 이미 미국으로 출국해버린 상태였다. 결국 검찰은 공소시효가 완료돼 기소를 하지 못하니 권 씨가 그와 같은 자백을 했다는 발언만 발표하기로 했다. 그날 서울지검을 향해 남태령을 넘고 있던 미인도는 다시 과천으로 돌아갔다.

당시 고서화 위조범 권 씨를 수사했던 검사인 최순용 변호사(사법연수원 15기) 등 그때 서울지검 수사팀에 따르면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천 화백의 미인도는 위작에 가깝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최 변호사는 24일 “권 씨가 검찰 조사에서 ‘자신이 미인도를 그렸고 양심의 가책 때문에 이제라도 자백한다’고 말했다”며 “권 씨의 표정 등에서 거짓된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림 위작 사건에서 화백의 진술이 절대적”이라며 “앞으로 수사가 시작되면 협조할 것”이라고 했다.

최 변호사는 “권 씨가 ‘미인도는 달력 그림을 조합해서 만들었다’ 등의 진술을 했고 진술 조서가 10쪽 정도 됐다”고 말했다. 권 씨의 진술은 17년간 검찰에 남아 있다. 최 변호사는 권 씨의 위작 능력이 천 화백 작품을 충분히 그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권 씨는 유명 작가의 진품 위에 기름종이를 놓고 목탄으로 그린 밑그림에 화선지를 덧대 놓고 먹과 물감으로 작품을 위조했다.

당시 검찰 수사팀의 간부도 “미인도를 위작했다고 진술한 내용이나 그 경로 등을 구체적으로 기억했기 때문에 권 씨의 진술이 진실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특히 “권 씨가 미인도 3개를 위작했다고 진술했고 그 위작품을 가져간 3명의 인물 이름을 진술했다. 그중 한 명은 유명 인사였던 A 씨로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
#위작#미인도#남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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