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뒤바뀐 이태원 살인사건 진범, 무능 검찰이 19년 허비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3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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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서울 이태원 햄버거집 화장실에서 대학생 조중필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미국인 아서 패터슨에게 어제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살인 당시 만 17세로 청소년이었던 패터슨에게 선고할 수 있는 최고형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심규홍)는 “살인 현장에 같이 있던 에드워드 리보다 패터슨의 옷에 훨씬 많은 피가 묻었고, 패터슨이 찔렀다는 리의 진술은 신빙성이 높은 반면 리가 찔렀다는 패터슨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검찰의 부실 수사가 이 사건의 해결을 19년이나 끌었다. 사건 직후 미군 범죄수사대(CID)는 제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해 패터슨을 용의자로 체포해 한국에 넘겼다. 그러나 검찰은 거짓말탐지기 등에 의존해 패터슨 대신 리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고, 리는 이듬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로 뒤집혀 풀려났다. 검찰은 1999년 패터슨에 대한 출국정지 기간이 만료됐으나 연장하지 않는 실수도 범했다. 이 사이에 패터슨은 기다렸다는 듯 미국으로 도망쳤다.

이 사건에서 리와 패터슨 중 하나 혹은 둘 다가 범인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검찰은 1998년 리가 무죄로 나온 뒤에도 10년 넘게 패터슨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하지 않다가 2009년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나오고 여론이 들끓자 뒤늦게 움직였다. 법무부의 범죄인 인도 요청에 따라 패터슨이 미국에서 체포돼 한국으로 송환됐으니 망정이지 자칫 영구 미제(未濟)가 될 뻔했다. 이번에 법원은 리를 살인의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라 공범으로 봤다. 그러나 이미 리는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무죄로 풀려났기 때문에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의 원칙에 따라 새로 기소될 수 없었다.

봄날 여자친구와 함께 이태원에 놀러 온 한 평범한 대학생을 이유도 없이 ‘쾌락 살인’하듯 흉기로 찔러 죽인 미국인은 마침내 응분의 벌을 받게 됐다. 피해자 부모들은 아들을 죽인 범인이 누군지 몰라서, 또 대한민국 검찰이 알고도 놓쳐서 19년간 한을 품고 살았다. 뒤늦게라도 진범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정의의 실현이 너무 지연됐다.
#이태원 살인사건#아서 패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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