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70년대 시스템 갖춘 유성시외버스정류소 ‘위험천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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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유성시외버스정류소가 지정좌석제나 순번제를 시행하지 않아 승객들이 비가 내리는 데도 대합실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버스에 먼저 타기 위해 주차장을 서성거리고 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대전유성시외버스정류소가 지정좌석제나 순번제를 시행하지 않아 승객들이 비가 내리는 데도 대합실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버스에 먼저 타기 위해 주차장을 서성거리고 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대전 유성과 주변 다른 시도를 연결하는 교통 관문인 유성시외버스정류소가 지정좌석제는 물론이고 순번제조차 실시하지 않아 여성과 노약자들이 몇 시간씩 차를 타지 못하고 부상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운영 주체인 정류소와 교통 지도를 하는 대전시, 유성구는 이용객들의 민원에도 불구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비난을 사고 있다.

○“속이 탄 아버지 전주에서 데리러 왔어요”

충남 공주의 한 대학 3학년인 여대생 김모 씨(22)는 지난 3년 동안 유성시외버스정류소를 이용하면서 심한 고통을 겪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그는 주말이면 전주의 집에서 지내기 위해 금요일 이 정류소를 이용해 귀가하곤 했다. 하지만 정류소는 종착 터미널이 아니라 경유지라는 이유로 좌석제는 물론이고 순번제조차 실시하지 않는다.

차표에는 좌석번호와 탑승시간, 탑승순위 등 그 어느 것도 적혀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버스가 도착하면 한꺼번에 몰려들어 아수라장이 됐고 힘에 부친 노약자나 여성들은 언제 버스를 탈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다. 지난해 1월의 한 금요일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오후 3시 정류소에 도착했으나 3시간 동안 차를 타지 못했다. 급기야 답답함을 견디다 못한 김 씨의 아버지가 승용차를 1시간 이상 몰고 와 직접 딸을 데리고 가야만 했다.

김 씨는 “순번제를 시행하지 않고 줄도 서지 않아 행선지의 버스가 들어오면 이용객들이 먼저 타기 위해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다른 버스 사이를 뛰어가기 때문에 위험천만하다”며 “불편과 위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용객이 상대적으로 적은 토요일에 집에 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기자가 정류소에서 만난 이용객들은 “큰 짐을 가진 경우 버스에 탈 생각을 아예 접어야 한다”고도 했다. 버스 짐칸에 짐을 실은 뒤 탑승하려면 이미 좌석이 다 차 버린 상태여서 탑승할 수도, 짐을 다시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 현황 파악 못한 대전시 엉뚱한 답변만 되풀이

1979년 인가를 받은 유성시외버스정류소는 하루 이용객이 3800명이 넘는 터미널급 정류소다. 서울을 비롯해 대전 주변의 타 시도 24개 노선에 걸쳐 372회가 운행된다. 하지만 1960, 70년대의 ‘약육강식형 탑승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탑승 불편 외에도 안전 위험과 불친절 등 다양한 민원이 오랫동안 정류소와 유성구, 대전시에 제기됐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대전시 홈페이지의 ‘대전시에 바란다’에 3월 22일 민원을 제기한 또 다른 대학생 김모 씨는 “버스가 출발시간 1∼2분을 앞두고 급박하게 도착하는 경우도 많아 더욱 급해지기 때문에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22일 청주행 버스를 탔다는 박모 씨는 “운전기사가 ‘야 안전벨트 매’라고 반말을 해 항의하자 ‘너 몇 살이냐? 내려’라면서 다짜고짜 화를 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추진 중인 시외버스 통합전산망 사업이 아니더라도 지정좌석제는 정류소가 터미널과 연락 체계를 갖추면 어느 정도 시행이 가능하다. 최소한 순번제나 행선지별 줄 세우기로 혼란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정류소 관계자는 “인원이 없다. 터미널에 알아보라”라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최근 유성구청에서 간담회를 갖고 시외버스사업자들에게 시민 불편 해소책을 강력히 주문했다는 대전시 관계자는 “순번 탑승이 아직도 안 이뤄진다는 얘기냐”라고 반문했다. 민원 내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시외버스 통합전산망 작업이 완료되면 사정이 좋아질 것”이라는 엉뚱한 답변을 늘어놨다. 이처럼 엉뚱한 답변이 되풀이되는 데 대해 민원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다.

아버지가 직접 자신을 데리러 왔다고 밝혔던 김 씨는 15일 ‘대전시에 바란다’에 올린 ‘대전시 담당자의 무책임한 답변에 대해’라는 글에서 “같은 내용의 민원이 지난 수년간 수차례 제기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시는 지정좌석제를 위한 통합전산망 구축에 차질이 생겨 늦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와 2018년에 완공되는 유성터미널 사업을 빨리 추진하겠다는 등의 무책임한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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