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연금, 법적 근거 없어 시행 못한다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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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액 半은 이웃돕고 半은 연금받아… ‘나눔기본법’ 국회 논의 안돼 폐기위기

공기업을 다니다가 최근 퇴직한 김모 씨(58)는 “몇 년 후부터 국민연금도 수령하는 데다 집도 있으니 평소 소신대로 퇴직금은 기부해 어려운 이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가 가족의 반대에 부닥쳤다. 평균 수명이 길어져 돈이 더 필요한 데다 기부금이 제대로 쓰일지 의문이라는 얘기를 가족들로부터 들어야 했다. 그러던 중 김 씨는 ‘기부연금제도’에 대해 알게 됐다.

이는 기부자가 현금이나 부동산을 공익 법인에 기부하면 본인이나 유족에게 일정 금액을 연금처럼 정기적으로 지급하고 나머지는 공익사업에 쓰는 제도를 말한다. 기부를 하고도 정작 본인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기부천사’의 노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따라 기부연금제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다. 미국이나 캐나다,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됐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관련 법적 근거가 없어 시행되지 않고 있다. 김 씨는 “기부액 중 일부를 연금으로 받는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부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나눔기본법’은 19대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2013년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나눔기본법은 기부자가 기부금액의 50% 이내에서 정기적으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머지 기부금품은 기부자가 정하는 공익사업에 사용하도록 했다.

또 현재 나눔 관련 정책이 보건복지부와 안전행정부, 기획재정부 등 여러 부처로 나뉘어 있어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를 국무총리 소속의 ‘나눔문화위원회’에서 총괄해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관련 단체들의 요구사항을 추가, 보완해 수정안을 냈지만 17일부터 시작된 11월 정기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의 안건에도 오르지 못한 것. 이번에 논의되지 못하면 이 법안은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복지위 측은 “이 법안이 유관 단체와 합의를 제대로 이루지 못한 데다 처리해야 할 다른 법안이 많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김동철 의원도 기부연금제도 도입에 초점을 맞춘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지만 구체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나눔 문화는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게 아닌 만큼 이를 촉진할 수 있는 나눔기본법이 빨리 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무성 숭실사이버대 부총장(한국비영리학회 회장)은 “특히 기부연금은 사회지도층 및 부유층은 물론이고 중산층까지 기부를 확대할 수 있는 좋은 제도”라며 “국회에서 나눔기본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기부연금제도가 빨리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기부연금#근거#기부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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