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만공스님은 독립운동가… 한용운에 독립자금 전달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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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수덕사 학술대회서 재조명
“日총독 면전서 불교정책 정면비판… 일제 저항정신 일깨운 중요 사건”

만공 스님(가운데)의 독립운동 행적을 소개한 수연 스님(앞줄 왼쪽)이 함께 찍은 사진. 앞줄 오른쪽이 수연 스님에게 이 이야기를 전한 원담 스님. 만공선양회 제공
만공 스님(가운데)의 독립운동 행적을 소개한 수연 스님(앞줄 왼쪽)이 함께 찍은 사진. 앞줄 오른쪽이 수연 스님에게 이 이야기를 전한 원담 스님. 만공선양회 제공
‘한국의 선맥(禪脈)을 이은 만공 스님은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20일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충남 예산군 수덕사에서 만공선양회 주관으로 열리는 ‘만공대선사 학술대회’에서 발표자들은 일제강점기 행적을 통해 만공 스님을 이렇게 재조명한다. 만공 스님이 만해 한용운 선사에게 독립자금을 여러 번 전달했다는 새로운 증언도 소개됐다. 만공 스님이 일본 총독의 면전에서 일제의 불교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한 일은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을 일깨운 사건이었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 “만해 스님에게 독립자금 전달” 새로운 증언

학술대회에 소개된 새로운 증언은 수연 스님(90)이 만공 스님을 시봉(받들어 모심)했던 원담 스님으로부터 1942년 들은 이야기이다. 현재 예산 수덕사 인근의 견성암에 머무는 수연 스님은 만공 스님을 시봉했던 스님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이다.

“만공 스님이 간월암(충남 서산시 간월도)에서 천일기도를 시작한 1942년 8월 초순의 일이다. 만공 스님을 시봉했던 원담 스님으로부터 ‘우리 노 스님(만공 스님)이 실제 숨어있는 독립운동가’라는 말을 들었다. 원담 스님은 그 말을 할 때, 행여 누가 들을세라 주저하며 목소리를 낮추어 은밀하게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만공 스님이 한양에 갈 때마다 따라갔던 원담 스님은 ‘(만공 스님이) 총독부 회의에 참석했던 날도 그랬고, 선학원 고승 대회에 참석했을 때도 그랬는데, 밤에는 삼청공원에 있던 은밀한 장소에 가서 한용운 스님을 만나 독립자금이 든 봉투를 건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말했다.”

만공 스님은 만해 스님이 열반에 든 이후로는 서울에 가지 않았을 정도로 두터운 도반이었다. 수연 스님은 “간월암 천일기도는 대외적으로는 평화 기원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독립을 기원하는 것이었다”며 “만공 스님이 우리 고장의 자랑인 유관순 열사나 윤봉길 의사 같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법문할 때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경청했다”고 전했다.

○ “총독 면전 호통, 일제 저항정신 일깨워”

만공 스님이 당시 미나미 지로(南次郞) 조선총독의 면전에서 호통을 치면서 일본의 불교 정책을 비판한 일은 정신적 독립운동이라고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의 논문 ‘만공의 정신사와 총독부에서의 선기발로 사건’에 따르면 조선총독부는 1937년 3월 11일 전국 사찰 31개 본산 주지와 전국 13개 도지사를 불러 불교정책에 대한 방침을 전달하고 건의사항을 듣는 회의를 마련했다. 이날 만공은 “청정이 본연하거늘 어찌하여 산하대지가 나왔는가! 전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는 우리 조선 불교를 망친 사람이다. 전 승려로 하여금 일본 불교를 본받아 대처, 음주, 식육을 마음대로 하게 하여 계율을 파계하고 불교에 큰 죄악을 입힌 사람이다. … 정부에서 간섭을 하지 않는 것만이 유일한 진흥책이다…”라고 비판했다. 이 사건은 만해 스님의 수제자였던 금봉 스님(최범술)이 취재해 당시 잡지 ‘불교’에 기고했다. 만해 스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 만공 스님을 만나 “사자후(만공 스님의 비판)에 여우 새끼들(일제)의 간담이 서늘했겠다”며 얼싸안고 만세를 불렀다고 전한다.

김 교수는 “일제의 불교정책은 사찰이 독립운동의 근거지나 정치문제 논의의 장이 되지 못하게 하는 데 불교정책의 초점을 둔 중요한 식민지 통치정책이었다”며 “이를 비판해 민족의 기개를 보여준 만공의 행적은 정신적인 독립운동”이라고 말했다. 만공선양회장인 옹산 전 수덕사 주지는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던 일제강점기에 총독을 향해 만공 스님이 휘두른 ‘마음의 칼’은 폭탄보다 큰 위력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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