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버스 사라진 캠퍼스… 취업절벽에 ‘우울한 추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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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알바로 이용 급감… 이대-서강대-홍대 운행포기
KTX 등 교통 다양화도 한몫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인 강모 씨(21)는 올해 추석 연휴에 고향인 대전에 가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11월 외국어 시험 준비에 ‘다걸기(올인)’할 작정이다. 강 씨는 “먼 거리는 아니지만 부모님에게는 ‘시험이 끝나고 주말에 따로 찾아뵙겠다’고 전화를 드렸다”고 말했다.

올해 2월 중앙대를 졸업한 취업 준비생 문모 씨(23)도 이번 추석 귀향을 포기했다. 그는 “취업을 걱정해 주는 가족과 친척을 만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어차피 취업이 안 된 마당에 명절 분위기도 안 난다”며 “연휴 때도 평소대로 취업 스터디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취업 준비를 위해 명절 귀향을 포기하는 이른바 ‘귀포자’가 늘어나면서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 온 대학가 귀향 버스가 사라지고 있다. 1990년대 서울지역 대학들에서 자리 잡은 귀향 버스는 대학 총학생회나 학생복지위원회가 주도하는 일종의 버스표 공동 구매 사업이다. 일반 고속버스 요금보다 20∼30% 저렴한 요금에다 터미널이나 역까지 가지 않고 학교에서 버스를 바로 탈 수 있는 장점 덕분에 많은 학생이 애용했다.

하지만 최근 귀향 버스 이용객이 줄고 총학생회 등이 부담하는 적자가 커지면서 일부 대학에서는 귀향 버스 사업을 아예 폐지했다. 이화여대 서강대 홍익대 총학생회는 10년 이상 유지해 온 귀향 버스 사업을 올 추석에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서강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학생회비를 내는 학생이 줄면서 총학생회도 긴축 재정을 해야 한다. 귀향 버스 이용객이 전보다 줄면서 지난 추석 때는 총학생회 예산 약 100만 원을 썼지만 이용객은 100명을 조금 넘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에 따르면 2011년 97명이던 귀향 버스 이용자가 지난해 44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다른 대학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한때 20개에 달했던 고려대 귀향 버스 노선은 이용객 감소로 올해는 12개로 줄었다.

귀향 버스 이용객 감소의 주된 원인은 명절 연휴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학생이 늘어난 데 있다. 올해 휴학한 조경근 씨(24)도 이번 추석 연휴는 토익 스피킹 학원에서 보낼 계획이다. 조 씨는 “고향에 내려가면 왕복 3일은 걸리고 운전을 하면 피곤해 연휴 후유증이 크다. 마침 학원도 추석 당일만 빼면 연휴 기간에 정상 운영한다고 해 부모님께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부득이 내려가지 못하는 귀향 포기자도 있다. 고려대 김모 씨(26)는 올해 처음으로 귀향을 포기했다. 월세와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대학 1학년 때부터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올해 과외 학생이 고3이라 추석 연휴에도 과외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당장 과외를 못 하게 되면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하는 처지라 과외 학생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또 KTX 등 과거에 없던 교통편이 생겼고 인터넷을 통한 상시 예매가 가능해진 점, 서울지역 대학들의 지방 출신 신입생이 줄어든 것도 귀향 버스 이용객 감소의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대 합격생 중 수도권 출신은 2011년 55.2%, 2012년 57.2%, 2013년 57.6%, 지난해 61%로 해마다 증가했다. 고려대, 이화여대 등도 전년 대비 수도권 출신 학생이 소폭 늘었다.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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