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문소 총기사고 피의자 박모 경위, 유족 앞에 무릎 꿇고 흐느끼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8일 21시 14분


코멘트
“죄송합니다. 저도 그때 따라 죽었어야 했는데…”

검문소 총기사고 피의자 박모 경위(54)가 유족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박 경위는 28일 서울 은평경찰서에서 열린 피해자 박모 상경(21)의 영결식에서 유족들을 만났다. 유족들이 영결식을 중단하고 “박 경위의 사죄를 받아야겠다”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은평서 측은 박 경위의 의사를 확인한 뒤 경찰서 로비에서 비공개로 가족과 만나도록 했다.

박 상경의 어머니는 등산복 차림의 박 경위를 보자마자 “왜 내 아들을 죽였냐”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박 경위는 유족들이 들고 온 영정 앞에 절하며 목놓아 박 상경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유족들에게 “죄송하다”며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고의가 아니었냐는 유족의 질문에는 흐느끼면서 강하게 부인했다. 양 측의 만남은 10분을 넘지 않았다.

이날 영결식에 참석한 유족들은 사건 당일 박 상경이 이송된 병원으로 달려왔을 때 옷차림 그대로였다. “오빠가 제 졸업식에 꼭 오기로 약속했는데 못 지키고 갔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인 여동생의 사연에 영결식장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 상경의 큰아버지 박오용 씨(62)는 “우직하게 근무한 죄밖에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박 상경은 사건 전날인 24일부터 휴가였지만 북한 포격 도발로 경계태세가 강화되자 휴가를 자진 반납했다.

영결식은 박 상경과 함께 근무했던 후임 의경의 고별사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발인식에서 울음을 보이지 않았던 박 상경의 아버지는 끝내 아들 영정 앞에서 무너졌다.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휠체어를 타고 참석한 어머니는 아들이 입었던 제복만 꼭 끌어안았다. 그는 “한 번만 더 만져볼 수 있다면, 차라리 내 아들이 범인이었으면 좋겠다”며 오열했다.

박 상경의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 경찰 개인의 잘못으로만 보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89년 경찰 제복을 입은 박 경위는 과거 근무지 이탈과 품위손상으로 감봉 3개월 징계를 2차례 받았다. 또 2008년부터 최근까지 불안신경증 증세로 신경안정제를 복용했다. 2009년과 2010년에는 3개월 간 우울증 약을 처방받기도 했다. 각별한 관리가 필요한 경찰을 오히려 총기 휴대가 필수인 검문소에 배치한 것 자체가 문제였다는 지적이다.

특히 검문소는 일선 경찰서나 지구대에 비해 관리감독이 허술한 근무지로 꼽힌다. 과거 검문소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경찰관은 “검문소는 사실상 관리감독의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따로 떨어져 있는데다 소수만 근무하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한 검문소에는 의경 4명과 경찰관 3명이 교대 근무했다.

경찰 조사 결과 검문소 내 총기 관리와 근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박 경위는 17년 전 바뀐 총기 규정을 숙지하지 못했으며 잘못 알고 있는 규정마저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관할 경찰서에서는 “평소 검문소 근태를 점검했다”는 말만 반복할 뿐 구체적인 관리감독 현황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이에 유족들은 여전히 경찰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영결식에서도 이런 지적이 또 나왔다. 박 상경의 여동생은 영결식 단상에 올라 “저는 이걸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빠 잊지 말고 정확한 진상 규명을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영결식에는 유족과 친구, 경찰 등 280여 명이 참석했다. 경찰은 박 상경을 수경으로 추서했다.

김호경기자 whalefish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