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감형 대가 거액수임료에 쐐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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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형사사건 성공보수 무효 판결
기업인 석방엔 100억이상 요구도… 대법 “사법제도 신뢰 떨어뜨려”
“전관예우-연고주의 뿌리뽑는 계기”… 변호사들은 “서비스 질 저하” 반발
착수금 대폭인상 편법 우려도

회사원 김모 씨(52)는 지난해 아들이 절도 혐의로 구속되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했다. 과거 형사재판을 받아 본 지인이 ‘무조건 판검사 출신 변호사를 쓰라’고 강력히 권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구속돼 재판에 넘겨지자 변호사는 담당 판사와 친분이 있다며 아들을 보석으로 풀려나게 해 주겠다고 했다. 그 대가로 성공보수 1억 원을 요구했다. 착수금으로 이미 1000만 원을 건넨 김 씨는 액수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들이 보석으로 석방되고 집행유예 판결을 받자 그는 은행 대출을 받아 1억 원을 건넸다.

그동안 법조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상황을 가상한 사례다. 하지만 앞으로는 김 씨 사례처럼 변호사가 석방이나 무죄 등을 조건으로 별도의 성공보수를 받을 수 없게 된다. 대법원은 전관예우와 연고주의를 뿌리 뽑는 ‘혁명적인’ 판례가 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아직 결과를 속단하기는 어렵다.

○ 형사는 무효, 민사는 유효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3일 허모 씨(38)가 조모 변호사에게 석방 대가로 건넨 성공보수 1억 원을 돌려 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전원일치로 확정하면서 이 판결 이후의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라고 선언했다. 재판부는 “형사사건에서 석방이나 집행유예 등 피고에게 유리한 수사·재판 결과에 대해 ‘성공’이라는 이름을 붙여 금전적인 대가를 결부시키는 건 국가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며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법률 행위는 무효’라는 민법 103조를 근거로 이같이 판결했다. 23일 이전에 맺은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은 효력이 인정된다. 변호사 개인의 역량이 중요한 민사사건에서의 성공보수 약정은 기존과 마찬가지로 유효하다.

이번 판결로 형사사건에 대한 변호사 비용이 줄어들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동안 형사사건 피의자는 수백만∼수천만 원의 착수금을 먼저 내고 구속영장 기각이나 석방, 집행유예나 무죄 판결 등을 이끌어 내는 조건으로 별도의 성공보수를 주는 수임 계약이 일반적이었다. 이 때문에 현직 판검사에게 청탁할 수 있는 기회나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판검사 출신 변호사는 억대의 성공보수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구속된 유력 기업인을 석방시켜 주고 100억 원 이상을 받은 사례도 있다.

○ “사법 혁명” vs “법률 서비스 질 저하”

절박한 상황에 놓인 대다수 형사사건 당사자는 비싼 성공보수에도 전관 출신 변호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검찰 고위직을 지내고 몇 해 전 개업한 한 변호사는 성공보수 1억 원 미만의 사건은 아예 수임조차 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고위급 전관들은 착수금을 거의 받지 않고 성공보수를 억 단위로 받는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이번 판결은 전관 출신 변호사를 무력화하는 ‘혁명적’인 판례 변경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성공보수를 받지 못하게 되면서 착수금을 대거 올리는 편법이 등장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예 착수금에 성공보수를 일정 부분 반영시킨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미리 수임료를 받은 만큼 사건 수임 이후 서비스 질이 과거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게 변호사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미국처럼 시간 단위로 보수를 지급하는 관행이 정착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착수금만 챙기고 일은 거의 제대로 하지 않는 소위 ‘먹튀’ 변호사를 양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먹튀 변호사는 시장에서 저절로 걸러질 것”이라며 “이번 판결은 국민의 뿌리 깊은 사법 불신을 불식시킬 사법 혁명”이라고 말했다.

조동주 djc@donga.com·신나리 기자
#수임료#대법#성공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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