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음란대화·욕설… 불쑥 나와 ‘깜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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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대화 앱에 상처받는 초등생들

가상대화 앱 ‘엑소톡’을 사용하는 모습.
가상대화 앱 ‘엑소톡’을 사용하는 모습.
서울지역 한 초등학교 5학년 A 양은 자신의 스마트폰에 한동안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지 않고 있다. 최근 가상 대화 앱인 ‘엑소톡’을 설치했다가 충격적인 일을 겪었기 때문.

엑소톡은 아이돌그룹 ‘엑소’의 멤버들과 가상으로 대화를 글로 나눌 수 있는 앱. 백현 디오 등 멤버들의 채팅창에 들어가 말을 걸면 이들 멤버들이 말한 것처럼 답변이 글로 표현된다. “잘 지냈어?”라고 사용자가 말을 걸면 “잘 지냈어. 너는?”이라고 답변이 나오는 식. 물론 이런 답변은 멤버들이 진짜로 해주는 게 아니라 개발자가 기본으로 설정해 놓은 내용이나 사용자들이 입력한 내용들이 사용된다.

문제는 음란한 말이나 욕설이 걸러지지 않고 답변으로 나오기도 한다는 점. A 양은 엑소톡에 “헤어지자”라는 말을 했다가 음란한 행동을 같이하자는 답변을 들었다. 충격을 받은 A 양은 바로 앱을 지웠다.

A 양처럼 호기심에 가상 대화 앱을 설치했다가 음란한 말, 욕설 등으로 인해 상처를 입는 초등생이 적지 않다.

진짜 친구처럼 느껴져


가상대화 앱 ‘심심이’의 채팅창에서 나오는 욕설. 앱 화면 캡처
가상대화 앱 ‘심심이’의 채팅창에서 나오는 욕설. 앱 화면 캡처
초등생 사이 인기 있는 가상 대화 앱 ‘심심이’. 세종시의 한 초등학교 5학년 B 양은 얼마 전 심심이 앱으로 대화를 하다 화가 났다. “안녕. 오랜만이야”라는 일상적인 말을 했는데 갑자기 심심이가 욕을 했기 때문. 서울의 초등학교 5학년 C 양 역시 심심이로부터 “개XX야”라는 욕설을 들었다.

“심심이가 뜬금없이 욕을 내뱉는 바람에 저도 입에 욕이 붙었어요. 저도 모르게 친구한테 욕을 한 적도 있어요.” (D 양·전북의 초등학교 6)

욕뿐 아니라 빈정거리는 말투도 초등생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나 오늘 피곤해”라고 말하면 “축하해”라는 답이 돌아오는 식. B 양은 “진짜 친구처럼 느껴져 마음을 열었는데 빈정거리는 대답을 보고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가상대화 앱을 사용하는 초등생들은 “진짜 친구와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기분이 들어 앱에게 자꾸 말을 걸게 된다”고 전한다.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많아 나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친구들과는 즉시 대화를 하기 어렵지만 가상대화 앱은 언제든 말을 걸면 답을 해주기 때문이다.

엑소톡의 경우 ‘아이돌과 실제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초등생들을 유혹한다. C 양은 “가상으로라도 엑소와 대화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5분이라도 실제 친구와 대화를

가상대화 앱은 개발자들이 자체적으로 해로운 말을 걸러내고 사용자들의 신고를 통해 욕설 등을 지우고 있지만, 결국 전부 걸러지지는 않는다. 일부 사용자가 좋지 않은 답변을 계속해서 앱에 저장하기 때문.

게다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앱을 내려받는 곳인 ‘구글플레이’에는 ‘이 앱은 초등생이 사용하기엔 적절하지 않다’는 안내가 없다. 엑소톡의 경우 콘텐츠 등급이 ‘전체 이용 가’다. 심심이는 ‘만 17세 미만의 어린이에게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안내가 되어 있지만, 이용자의 나이를 확인하는 절차가 없다.

구글플레이 측은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가 이용할 수 없는 등급의 앱만 이용자의 나이를 확인하는 인증 절차를 거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초등생이 가상대화 앱을 스스로 쓰지 않도록 학부모가 지도하는 것이 최선인 것.

인터넷·스마트폰 중독 치료 전문가인 이경숙 교수(한신대 재활학과)는 “초등생 나이 때에는 또래와 의사소통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 가상대화 앱을 사용하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이런 앱을 사용하면 욕구가 채워지기는커녕 오히려 상처만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상대화 앱으로는 짧은 문장으로 간단한 대화가 오가는 것 이상의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이 교수는 “앱과 대화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실제 인간관계에서 대화가 서툴러질 수 있다”면서 “자녀가 가급적 이런 앱을 쓰지 않도록 지도하고, 하루에 5∼10분이라도 실제 친구와 얼굴을 보고 대화하도록 권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김보민 기자 g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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