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미군포격 민간인희생자 유족에 “국가 배상” 첫 인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8일 15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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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포격으로 숨진 민간인 피해자 유족에게 국가 배상을 인정한 첫 판결이 나왔다. 과거사 배상 사건에서 피해자 측 발목을 잡던 소멸시효 안에 소송을 냈던 점이 주효했다.

서울고법 민사30부(부장판사 이진만)는 한국전쟁 당시 미 해군의 함포사격으로 숨진 방모 씨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1심을 깨고 “4888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한국전쟁이 아군에 불리하게 진행 중이던 1950년 9월 1일 100여명의 피난민이 몰려있던 경북 포항의 송골해변은 10분 간 15발의 포탄이 떨어지며 쑥대밭이 됐다. 근처 해안에 정박 중이던 미 해군 헤이븐호가 국군의 요청에 따라 발사한 포탄이었다. 과거사위 조사 결과 당시 국군은 헤이븐호에 ‘피란민 중 인민군이 섞여 있다’며 포격 지원을 요청했다.

1심 재판부는 함포사격 명령과 실제 포격을 한 주체가 모두 미군이라며 한국 정부에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미 해군이 망인들에게 포격을 개시한 것은 국군의 포격 지원 요청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면서 “국가는 이 포격을 요청함에 있어 중대한 과실로 미군과 공동으로 망인들의 신체의 자유, 생명권 등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정부는 유족 측이 불법행위가 있은 날부터 5년간인 소멸시효가 이미 지났기 때문에 손해배상청구권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과거사 국가배상 사건에서 진상규명결정이 있은 뒤 3년 이내라는 단기 소멸시효기간을 적용하는데 방 씨 유족은 3년이 경과하기 하루 앞서 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과거사정리법은 입법 취지상 새삼 소멸시효를 주장하면서 배상을 거부하지는 않겠다는 의사가 담겨있다고 보인다”며 정부의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포격으로 인해 숨진 민간인과 그 유족들에 대해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한 사례는 있었지만 실제 배상 판결로 이어지진 못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7월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폭격 사망자에 대해 국가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시효가 지나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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