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동양 사태’ 증인에 자문계약 교수 내세운 로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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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앤장, 항소심서 ‘전문가 평가’ 요청… 출석 교수는 경영진에 유리한 증언
검찰측 반대 신문서 사실 드러나… 재판부 “증인 중립성 잃었다”

13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417호 대법정. 서울대 박모 교수(49)가 파워포인트 자료 뭉치를 들고 법정으로 들어섰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최재형) 심리로 열린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66)과 정진석 전 동양증권 대표(58)의 항소심 13차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것이다. 그는 “증인석에 처음 앉아 본다. 떨린다”며 증언을 시작했다.

정 전 대표의 항소심 변호를 새롭게 맡은 김앤장법률사무소는 앞서 1월 초 박 교수를 구조조정 분야의 권위자라며 전문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발행해 투자자 4만여 명에게 1조3000억 원의 손실을 입힌 ‘동양 사태’가 사기 사건이 아닌 경영상의 구조조정 실패라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박 교수는 이날 공판에서 “동양그룹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CP 등을 갚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전문가 입장에선 동양사태가 굉장히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증언했다. 또 “동양그룹의 회생채권 변제 비율이 평균(25%)보다 높은 66% 정도였고 부채비율도 안정적이었다”며 “회사 주주와 직원들도 피해를 보았고,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경영진의 당시 구조조정 전략이 시장을 왜곡하기 위해 내놨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방청석을 메운 동양사태 피해자들이 야유를 보내자 재판장은 “재판부가 모든 것을 다 믿는 것은 아니다”라며 진정시켰다.

문제는 검찰의 반대신문 과정에서 불거졌다. 검찰 측이 증인으로 나온 계기와 관련해 “변호인단에서 자문 계약 의뢰를 받고 수임했느냐”고 물었고 박 교수는 “그렇다. 지난해 말에 의뢰를 받고 올해 초에 계약했다”고 답변했다. 김앤장이 ‘동양그룹의 구조조정 계획을 경영학적 관점에서 평가해 달라’고 증인에게 요청했다는 것. ‘순수한’ 전문가로 내세운 증인이 알고 보니 변호인 측과 사전에 자문 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었다. 재판부는 당황해 “자문 계약에 따른 보수가 있었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신문을 진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변호인 측 신문은 끝난 상태였다.

공판에 출석한 검찰 관계자는 “공판 시작 전까지만 해도 모종의 관계가 있는지 몰랐다. 증인이 자료를 상세히 준비해 온 것을 보고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하던 중 증언에서 ‘자문’이라는 표현이 나와 확인차 질문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재판부도 “이전 재판부에서 채택된 증인이다. 신문 전에 알았다면 진행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최종 판단은 재판부가 하겠지만 박 교수가 전문가 증인으로서의 중립성을 잃은 건 맞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동양그룹의 구조조정 전략이 합리적이었는지 여부에 국한해 경영학 전문가로서 입장을 말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걸고 활동하는데 거짓말을 했겠느냐”며 “사실대로 말하기로 선서했기 때문에 숨김없이 자문 계약 체결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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