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인문학 강좌’ 10년… 신입생 면접장 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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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릴듯말듯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성 프란시스대학 11기 선발

6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 있는 문화공간 겸 카페 ‘길’에서 열린 성 프란시스대학 11기 노숙인 인문학 과정 면접시험은 자기소개와 시, 그림에 대한 간략한 의견을 말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6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 있는 문화공간 겸 카페 ‘길’에서 열린 성 프란시스대학 11기 노숙인 인문학 과정 면접시험은 자기소개와 시, 그림에 대한 간략한 의견을 말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후암로에 위치한 문화공간 겸 카페 ‘길’.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노숙인 대상 인문학 강좌인 성 프란시스대학의 11기 수강생 선발을 위한 면접시험이 열리고 있었다.

“자기소개를 해보라” “인문학 강좌를 왜 다니려는 것인가” “그만두지 않고 잘 다닐 자신이 있는가” 등 면접관들의 질문에 많은 노숙인은 집중해야 겨우 들릴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더듬더듬 대답했다. 면접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날 면접을 주도한 사람은 성공회 여재훈 신부. 성 프란시스대학의 학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 10년 동안은 시선 맞추기도 힘들 만큼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힐링’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며 “앞으로 새로운 10년은 힐링은 물론이고 일반인과 사회가 노숙인을 이해할 수 있도록 소통 기회를 만들어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노숙인들에게 가족과 일자리 찾을 용기 줘

성 프란시스대학은 매년 3월 초 25명의 노숙인을 선발해 1년 동안 주 2∼3회(매회 2시간 정도)씩 문학, 철학, 글쓰기 강좌를 진행한다. 자기 개선 의지가 남아 있는 노숙인을 위한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기수마다 2 대 1 정도의 입학경쟁률을 기록하고 있고 졸업생들에게서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난다. 정상적으로 과정을 졸업한 180여 명의 노숙인 중 60∼70%가 현재는 가족과 연락을 하거나 꾸준한 일자리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에는 ‘사회 밑바닥’ 생활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봉사와 관련된 직업을 가진 이들도 있다. 김모 씨의 경우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딴 뒤 서울시가 운영하는 노숙인 지원기관인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상담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여 신부는 “노숙인들로부터 가장 자기 처지를 잘 이해해주고, 일도 빠르게 처리하는 사회복지사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역시 졸업생인 또 다른 김모 씨는 자전거를 제작하는 한 사회적 기업에서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술을 인정받아 새로 들어오는 직원들의 기술교육도 담당하고 있다.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졸업생도 여러 명이다.

11기 과정에 지원한 고모 씨는 “주변에서 이 과정을 수료한 뒤 삶이 달라진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나도 더 늦기 전에 세상이나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용기를 내 지원했다”고 말했다.

○ 세상과의 소통에도 시동 걸다

11일 개강하는 성 프란시스대학 11기 교육과정의 초점은 ‘세상과의 소통’. 최근 교육 공간을 새로 마련하면서 강의실뿐 아니라 카페와 소규모 공연이 가능한 형태로 꾸민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곳에서는 인문학 과정을 졸업했거나 다니고 있는 노숙인들이 주도하는 연극과 공연을 정기적으로 열 계획이다. 이를 통해 노숙인이 일반인에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일반인도 노숙인을 이해하는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것.

지금까지 축적한 ‘운영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기관에 전파하는 것도 성 프란시스대학의 새로운 계획 중 하나다. 이미 호주 성공회에서는 지난해 10월 사회봉사 활동 담당 주교를 성 프란시스대학에 파견해 10년간의 성과와 성공 노하우를 연구하기도 했다.

여 신부는 “세상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다 보면 성 프란시스대학이 ‘한국 노숙인만의 프로그램’이라는 인식도 서서히 바뀌지 않겠느냐”며 “이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노숙인#인문학#성 프란시스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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