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선박 타고 온 폐기물, 130m 깊이 ‘사일로’에 차곡차곡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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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방폐장 르포]

경주방폐장 3월부터 가동
방사성 폐기물을 실은 25t 하늘색 트럭이 동굴 입구로 들어갔다. 동굴 끝에는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보관하는 저장고인 거대한 ‘사일로(silo)’가 있다. 사일로에 폐기물이 가득 들어차면 콘크리트를 덮어 사일로는 영구 폐쇄된다.

24일 경북 경주시 양북면에 위치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내부가 공개됐다. 정부가 다음 달 경주 방폐장을 본격 운영하기로 결정하면서 1985년 건립 계획이 수립된 지 30년 만에 가동을 앞두고 있다. 이 방폐장은 지난해 6월 30일 완공됐다. 국내 원전에 임시 보관 중이던 원전 부품과 작업복 등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12만 드럼이 올해 5000드럼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옮겨진다. 드럼 하나는 200L다. 본보 기자가 경주 방폐장 시연 현장에서 ‘폐기물 로드’를 분석했다.

○ 선박에서 내린 뒤 특수 트럭으로 운송

경주 방폐장 인근에 위치한 월성원전을 제외한 나머지 원전에 보관 중인 폐기물은 해상으로 옮긴다. 여기에는 길이 78.6m, 무게 2600t급 전용 선박인 ‘한진 청정누리호’가 동원된다. 한진 청정누리호는 영광, 고리, 한울 등 경주 방폐장에서 멀리 떨어진 원전에서 폐기물을 실어 방폐장 인근 항구까지 안전하게 옮기는 임무를 맡는다.

해상 사고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진 청정누리호는 위치추적시스템과 자동 충돌 예방장치, 방사선 감시시설 및 소방시설 등 첨단 장치를 갖췄다. 또 이중 엔진과 이중 선체로 안전성을 확보했다. 폐기물에도 안전장치를 한 겹 더 입힌다. 두꺼운 철로 제작된 특수 운반용기에 드럼을 8개씩 넣은 뒤 선박에 싣는다.

한진 청정누리호가 뭍에 닿으면 여기서부터 방폐장까지 4.7km 정도의 짧은 육상 이동이 시작된다. 폐기물 하역장인 ‘월성원전물양장’은 월성 원전과 붙어 있다. 폐기물이 이곳에 도착하면 크레인이 선박에서 특수 운반용기를 하나씩 꺼내 전용 운반트럭에 차곡차곡 쌓는다. 하역장에서 방폐장까지는 트럭으로 5∼6분 거리로 짧지만 육로로 폐기물을 이동시킬 때는 최소 일주일 전 지역 주민에게 통보해야 한다.

○ 콘크리트 용기에 담겨 지하 130m 사일로에 저장

시연 현장인 경주 방폐장에 트럭이 도착하니 방사능 누출 확인 절차부터 거쳤다. 남색 방호복을 입은 직원들이 방사성핵종분석기, X선 검사설비 등을 동원해 방사능 농도와 표면 오염 여부 등을 정밀하게 검사했다. 검사가 끝나자 특수 운반용기에 담겨 있는 폐기물 드럼을 꺼내 두께 10cm 콘크리트 용기로 옮겨 담았다. 콘크리트 용기에는 드럼 16개를 한꺼번에 적재할 수 있다.

콘크리트 용기를 실은 트럭은 곧장 지하터널로 향했다. 트럭이 지나간 경로를 승합차로 따라갔다. 경사각 10도의 완만한 내리막길이 1.4km가량 이어졌고, 어느 순간부터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았다. 승합차가 터널 끝에 도착하자 철제로 된 7m 높이 셔터 2개가 잇달아 열렸다. 폐기물 저장고인 사일로가 그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일로는 개미집 같은 구조로, 가운데 통로를 두고 지름 23.6m, 높이 50m인 원통형 방이 양쪽으로 3개씩 총 6개가 늘어섰다. 트럭이 왼쪽 첫 번째 방인 ‘2번 사일로’ 앞에 멈춰 서자 높이 5m의 노란색 트롤리에 달린 초록색 그리퍼(크레인)가 서서히 움직여 콘크리트 용기를 들어올렸다. 콘크리트 용기는 지하 130m 아래로 모습을 감췄다. 오행엽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인수운영팀장은 “사일로에 폐기물을 쌓는 작업은 컴퓨터로 조종한다”면서 “방폐장의 본격적인 가동을 앞두고 오차를 줄이기 위해 실전처럼 연습해 왔다”고 말했다.

사일로 1개에는 1만6700드럼이 들어간다. 사일로 6개에 총 10만 드럼을 저장할 수 있는 셈이다. 이곳에서 방사성 폐기물은 반감기가 지나 자연 상태로 돌아갈 때까지 300년 동안 저장된다.

현재 각 원전의 폐기물 임시 저장고는 평균 80% 가까이 차 있다. 12만 드럼 분량이다. 국내 원전 24기에서는 연간 2400드럼 분량의 방사성 폐기물이 나온다.

○ 지하수 오염, 지진 발생 가능성 낮아

경주 방폐장은 2005년 용지 선정 때 안전성 논란이 일었다. 특히 하루 4000∼5000t씩 흘러나오는 지하수는 막판까지 문제가 됐다.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독일 아세 방폐장은 지하수 오염이 확인돼 2011년부터 방사성 폐기물을 꺼내 옮기고 있다”면서 “경주 방폐장은 폐기물을 다시 꺼낼 수 없도록 설계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9명 중 과반수인 5명은 방폐장 내부에 지하수가 스며들더라도 위험한 수준이 아니라는 점에 동의해 운영 승인을 허가했다. 최재붕 위원(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은 “방폐장이 지하수에 완전히 침수돼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를 타고 새어나오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시뮬레이션을 해도 국민에게 돌아오는 방사선 피폭량은 현재 장비로 측정이 불가능할 만큼 낮다”고 설명했다.

지진 가능성도 희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원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경주 방폐장에서 약 3km 떨어진 지역에 활성단층인 읍천단층이 있다”면서 “방폐장 안전 기준 범위인 1.6km 바깥인 만큼 지진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낮다”고 말했다.

경주=신선미 vamie@donga.com / 이우상 동아사이언스 기자
#경주방폐장#폐기물#사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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