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기용]단통법 명칭 바꾸자는 황당한 방통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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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통신사 위한 법’ 비판때문에?

김기용·산업부
김기용·산업부
방송통신위원회의 ‘헛발질’이 점입가경이다. 방통위는 지난주 기자들에게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의 약칭을 ‘단통법’으로 쓰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박노익 이용자정책국장이 A4용지 3장 분량의 자료를 들고 그 이유를 직접 설명했다.

박 국장은 “단통법이라는 약칭은 법령 내용을 유추할 수 없고 일반적인 약칭 사용법에도 맞지 않아 올바른 한글문화와 국어체계를 훼손하고 있다”면서 “‘단말기유통법’이나 ‘단말기법’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중에서 단통법을 ‘단언컨대 통신사를 위한 법’으로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사례까지 들었다.

지난해 10월 도입된 단통법은 소비자들에게 지급되는 단말기 보조금을 동일하게 규정한 것이 핵심이다. 다만 출시 15개월이 지난 구형 휴대전화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단통법 시행 후 통신사들은 최신 휴대전화를 더 팔기 위한 보조금 경쟁을 중단해 그만큼 비용을 절감하게 됐다. 반면 소비자들은 최신 휴대전화를 과거보다 더 비싸게 사게 됐다. ‘단언컨대 통신사를 위한 법’이라는 조롱이 나온 이유다. 그런데 방통위는 이런 소비자 불만은 외면한 채, 국립국어원에서나 주장할 만한 ‘한글문화와 국어체계 훼손’을 이유로 단통법 이름 바꾸기에 몰두하고 있다. 만약 방통위가 ‘가계 통신비 절감’이라는 단통법 취지만 제대로 살렸다면 단통법은 조롱 대신 ‘단군 이래 가장 좋은 통신 관련 법’이라는 칭찬을 들었을 것이다.

방통위의 ‘약칭 개명’ 주장에 미래창조과학부는 뒤통수를 맞았다. 미래부 홈페이지에서 ‘단통법’을 검색해 보면 제목과 내용에 ‘단통법’이 포함된 보도자료 수십 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방통위 주장대로라면 미래부는 한글문화와 국어체계 파괴의 원흉인 셈이다.

최근 방통위가 ‘지상파방송 광고총량제’ 도입을 강행하는 것도 우려가 크다. 지상파방송에 광고를 몰아줄 우려가 있는 이 제도는 지상파방송을 제외한 모든 언론 매체가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도 방통위는 눈과 귀를 막고 ‘진격’하고 있다. 방통위가 방송통신위원회의 약칭이 아니라 ‘일방통행위원회’의 약칭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단언컨대 방통위의 계속된 헛발질은 국민들의 박근혜 정부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불만을 키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창조경제의 성과를 내야 하는 집권 3년 차 골든타임을 방통위가 망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방통위가 ‘단통법’을 ‘단말기법’으로 바꾸는 땜질 처방에만 몰두한다면 조만간 ‘단말기법=단지 말만 앞세우는 기분 나쁜 법’이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단통법#명칭#방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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