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新명인열전]“억대 부농은 생산-가공-유통 꿰뚫어야 가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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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청림농원 안정균 대표

전남 강진군 칠량면 부용산 자락에서 유기농산물 인증을 받은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있는 안정균 청림농원 대표. 안 대표는 생산에만 그치지 않고 가공과 유통 분야에서 한발 앞서 나가며 기업농으로 우뚝 섰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전남 강진군 칠량면 부용산 자락에서 유기농산물 인증을 받은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있는 안정균 청림농원 대표. 안 대표는 생산에만 그치지 않고 가공과 유통 분야에서 한발 앞서 나가며 기업농으로 우뚝 섰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억대 부농은 부지런하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생산과 가공, 유통 전 분야를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

표고버섯 하나로 국내 유통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청림농원 안정균 대표(66)의 확고한 신념이다. 청림농원은 산 깊고 물 맑은 전남 강진군 칠량면 부용산 모재골에 자리하고 있다. 그는 82만5000m² 산자락에서 26년째 유기농산물 인증 버섯을 생산하고 있다. 연간 매출액은 무려 50억 원. 청림농원의 표고버섯은 대규모 생산임에도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여기에 안 대표만의 마케팅이 더해지고 전국적인 대형 유통망까지 확보하면서 소비자들이 붙여준 이름이 바로 ‘명품 버섯’이다.

○ 땀과 눈물로 만든 명품 버섯

안 대표는 1989년 버섯과 인연을 맺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경남 창원에서 직장을 다닐 당시 셋째 동생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74ha의 임야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했다. 동생이 기술과 경험 부족으로 실패하고 많은 빚만 남긴 채 미국으로 떠나자 그가 농장을 떠안았다. 직장 생활을 하며 조금씩 모은 돈으로 급한 빚부터 갚았다. 버려진 농장에서 표고 재배를 시작했지만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농장이 인적조차 없는 산골에 있어 딸을 창원 처가에 남겨둔 채 어머니와 아내만 데리고 움집 같은 슬레이트 건물에서 숙식하며 버섯을 키웠다. 자연산에 가까운 표고버섯을 생산하기 위해 노지 재배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종균이 활착되지 않아 1년 후에 생산된 표고는 대부분 상품가치가 없었다. 그는 전문서적을 읽고 해외까지 돌아다니며 정보와 자료를 수집한 끝에 노지 재배에 성공했다.

그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표고버섯은 향이 강하고 맛도 좋아 출하되자마자 최고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청정한 자연 환경 속에 비와 눈, 햇살과 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자란 표고버섯은 하우스 안에서 키운 버섯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품질은 최고였지만 넘어야 할 벽이 또 하나 있었다. 서울 가락동 시장에 제품을 출하했지만 품질에 비해 손에 쥐는 돈은 턱없이 적었다. 자연산이라고 해도 손색없는 노지 버섯이 중간상인의 유통마진 때문에 제값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안 대표는 제대로 평가를 받으려면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1.5t 트럭에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을 태우고 다니며 전국 농산물 판매 행사장과 백화점 전시장을 찾아다녔다. 버섯요리를 개발하고 시식회를 열었더니 대형 유통매장에서 그 진가를 알아보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버섯을 들고 전국을 누빈 지 5년 만에 대형 매장에 납품하게 됐다. 현재 그는 이마트 매장 120곳과 신세계백화점 이랜드리테일 서원유통 한살림 올가홀푸드 우체국쇼핑 등에 버섯을 납품하고 있다.

○ 생산 가공 유통에 눈떠야 진정한 부농

그는 다른 버섯과 차별화하기 위해 뭐든지 한발 앞서 나갔다. 1992년 국내 3000여 버섯농가 가운데 가장 먼저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취득하고 2008년 국제 유기농인증(IFOAM)에 이어 미국 농무부(USDA)의 친환경인증을 받았다. 1991년 국내 처음으로 ‘안정균’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제품 포장지에 넣는 생산자 실명제를 시행했다. 안 대표는 당시 판매되는 버섯포장이 4kg과 2kg짜리여서 가정주부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한두 끼니 먹을 수 있는 100g과 200g 단위로 과감하게 바꿨다. 유통 마진을 아껴 소비자에게 시중가보다 20∼30% 정도 싸게 판매한 것도 매출 신장에 보탬이 됐다. 버섯 품질을 5등급으로 분류하고 다시 크기와 색깔 수확시기에 따라 25종류로 세분화해 소비자의 선택의 폭을 넓혔다.

화려한 ‘홍보’보다 ‘현장 견학’을 주선한 것도 주효했다. 소비자와 바이어를 농장으로 초청해 생산과정을 직접 보여줬다. 농원을 둘러본 바이어들은 반드시 납품 계약을 맺었다. 안 대표는 “같은 상품이라도 마케팅에 따라 1만 원, 100만 원에도 팔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1997년부터 버섯가공식품 생산에 뛰어들었다. 한국식품연구원과 함께 표고버섯과 남해안 청정지역의 다시마 멸치 새우 홍합 함초소금 등을 혼합해 천연 조미료를 개발했다. 표고버섯 특유의 감칠맛을 살려 합성물질이나 화학물질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맛을 내는 조미료를 만들어 보자는 시도였다. 안 대표는 “거대 식품회사가 주도하는 조미료 시장에 도전하는 게 무모하다고들 했지만 품질만 우수하다면 소비자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농업인대상(1998년) 신지식농업인(1999년) 산업훈포장(2003년) 수출유망중소기업(2006년) 자랑스러운 전남인상(2008년), 유기가공품 인증(2014년)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안 대표는 “어느 작물을 재배하든지 전문가가 돼야 성공할 수 있다”며 “앞으로 청림농원에 표고시음장, 유기농 버섯학교 등을 개설해 친환경 버섯관광단지로 키우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청림농원#안정균#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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