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어르신 택시, 운전정밀검사 도입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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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택시운전사 75세 이상 1076명… 승객들은 불안
65세 이상 2005년 9%→2014년 29%… 나이 제한 없어 관둘때까지 운전
20, 30대는 힘들고 수입 적어 외면… 건강검진 강화 등 안전대책 시급

최근 아이와 함께 택시를 타고 강변북로를 달리던 정모 씨(34·서울 마포구)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창문 위에 달린 손잡이를 꽉 잡고 놓을 수가 없었다. 시속 70∼80km로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그가 탄 택시만 흐름을 타지 못한 채 시속 40∼50km로 달려 오히려 사고 위험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다른 차들이 ‘빵빵’ 경적을 울려도 택시는 좀처럼 속력을 내지 못했다. 앞좌석에 붙은 택시운전사 면허증을 자세히 보니 운전사는 70대 후반이었다. 정 씨는 “아이에게 안전벨트를 채우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30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며 “강변북로 중간에 내릴 수도 없고 집에 오는 내내 불안에 떨었다”고 말했다. 이후 정 씨는 택시를 잡을 때 운전사가 나이 지긋한 노인으로 보이면 타지 않는다.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사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탈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서울시 택시운전사 가운데 75세 이상 노인이 1076명으로 올해 처음으로 1000명을 넘어섰다. 연령별로 나눠 보면 75세 이상 79세 이하 운전사가 997명이고, 80세 이상도 79명이었다. 서울 택시 100대 가운데 1대는 75세 이상 노인이 운전하는 셈이다.

택시운전사의 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 중이다. 65세 이상 택시운전사가 개인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8.75%에서 올해 29.25%로 3.3배로 늘었다. 반면 30대 비중은 4.2%에서 0.7%로 뚝 떨어졌다. 택시 운전 자격에 나이 제한이 없다 보니 택시 면허를 취득하고 나면 자발적으로 그만둘 때까지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 반면 일이 고되고 수입이 적다 보니 20, 30대 청년층은 택시업계로 유입되지 않는다.

노인 택시운전사의 사고도 늘어나고 있다. 올해 2월 25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는 모범택시가 손님을 태우려고 호텔 로비로 다가가던 중 갑자기 출입구를 들이받았다. 택시운전사는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속도가 났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운전 실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를 낸 택시운전사의 나이는 82세였다. 2009∼2013년 서울시 택시 관련 교통사고 조사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운전사의 교통사고 비율이 22.2%를 차지했다.

심야시간 택시 승차난이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인 택시운전사들은 심야시간이나 날씨가 좋지 않으면 운행을 기피한다. 노인 택시운전사 비중이 높은 개인택시의 경우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심야시간 운행대수가 낮 시간의 6분의 1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나이가 들면 시력 청력 등 신체기능 약화와 함께 정보처리 속도 등 인지기능도 저하되므로 운전정밀검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일본은 65세 이상은 택시를 살 수 없고, 75세 이상은 택시를 팔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은 70세 이상 운전자가 면허를 갱신할 경우 건강검진을 반드시 받도록 하고 있다.

서울시는 노인 택시운전사 면허 요건 강화를 검토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처럼 고령자 운전적성정밀검사를 받도록 하는 대책을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건강한 노인은 계속 운전하게 하고, 승객은 안심하고 탈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관련 법 개정이 택시업계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012년 택시운전사 자격요건을 ‘70세 이하’로 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개인사업자의 정년을 제한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65세 이상이 되면 자격유지 검사를 받는 버스운전사와의 형평성도 논란이다. 최근 국토부는 5년마다 받던 자격유지 검사를 3년마다 받도록 강화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서울시#택시운전#운전정밀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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