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노역 판결 논란 ‘향판제’ 10년만에 폐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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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내년 2월 인사때 시행

‘황제 노역’ 판결로 도마에 오른 ‘지역법관’ 제도가 2004년 도입된 지 10년 만에 사실상 전면 폐지된다. 이 같은 결정은 지난달 28일 열린 전국 수석부장판사회의에서 폐지 주장이 나온 지 닷새 만이다.

대법원은 내년 2월 정기인사 때 지역법관 임기 10년을 채우는 법관들을 다른 고등법원 관할 지역으로 전보시키고 지역법관 신규 신청을 더이상 받지 않겠다고 2일 밝혔다. 현재 309명의 지역법관 중 내년에 임기가 만료되는 법관은 155명이다. 지역법관 중 근무 기간이 5, 6년이 넘는 70∼80명도 내년 2월 인사 때 전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5년 미만인 초임 지역법관들은 일반 법관과 같은 기준으로 인사할 예정이다.

이로써 2004년 2월부터 시행된 지역법관 제도는 그동안 지연 학연으로 얽힌 지역 인사들과의 유착이라는 폐해를 낳았다는 논란을 빚은 채 사라지게 됐다. 지역법관 신청 없이 일반 인사희망원을 통해 계속 지역근무를 하던 ‘지역 연고 법관(향판·鄕判)’들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권역으로 순환근무를 하도록 할 방침이다.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역법관 제도 폐지로 전체 인사 시스템 조정이 불가피하지만 지역법관 300여 명을 한 번에 인사조치하는 게 아니어서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역법관제가 갖는 업무의 효율성과 연속성 등 순기능도 있지만 재판의 투명성과 법원 신뢰를 위해 개선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날 사법부의 신뢰 회복을 위해 획기적인 정책들을 쏟아냈다. 우선 2015년부터 법정녹음제도를 전면 실시하기로 했다. 민사 재판의 모든 증인 신문을 법정에서 녹음하고 변론 과정은 원고와 피고 양측 모두가 동의하는 경우 녹음하기로 했다. 형사 재판은 증인 신문에 한해 녹음하고 심급별로 녹취(속기록 작성)도 병행하기로 했다. 1심 단독 재판은 법정 녹음을 원칙으로 하고 항소하면 사후 녹취가 가능하다. 1심 합의재판과 2심에서는 속기록 작성과 현장 녹음을 병행한다. 또 현재 형사 판결문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고 있는 것을 내년부터는 민사 판결문도 공개하기로 했다. 아울러 판결문과 결정문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삭제해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대법원은 또 ‘황제 노역’ 판결을 내린 장병우 광주지방법원장의 사표를 이날 오전 수리했다. 대법원은 “장 법원장과 대주그룹 간의 아파트 거래는 문제가 된 판결(황제 노역 판결)보다 2, 3년 앞서 이뤄져 위법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며 “법관 징계 시한인 5년을 넘겨 더 조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검찰도 ‘황제 노역’ 방지책을 내놨다. 대검찰청은 거액의 재산이 있는데도 노역으로 벌금을 대신하는 일이 없도록 전국 검찰청에 ‘재산 집중 추적·집행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특히 1억 원 이상의 고액 벌금 및 추징금 미납자는 재산을 집중 추적하기로 했다. 미납자의 과거 재산 보유 내용까지 파악해 재산 은닉이 드러날 경우 사해행위 취소소송까지 제기하기로 했다. 또 해외 도피 우려가 있는 미납자는 적극적으로 출국금지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법원이 노역 일당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할 때에는 항소 또는 상고하기로 했다.

:: 지역법관제도 ::


법관이 신청하면 대전·대구·부산·광주고등법원의 관할 법원 내에서만 근무하도록 한 제도. 10년 이상 근무하면 다른 지역으로 전보를 요청할 수 있다. 기존에 관행으로 있던 향판(鄕判)을 2004년 제도화한 것이다. 법관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막고 지역 사정에 밝은 법관을 양성하기 위해 도입됐으나 지연과 학연을 통한 유착 등 폐해가 지적돼왔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황제노역#향판제#지역법관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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