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자살자 10명중 6명엔 가정폭력 아픔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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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아주대, 60명 심리적 부검… 소통 적은 권위적 가정 출신도 63%

자살자 10명 중 6명은 부모나 배우자에게 가정폭력을 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집안 분위기가 억압적이어서 가족 간 교류가 적었을 때도 자살 확률이 높았다.

동아일보 탐사보도팀은 2011년~2013년에 발생한 자살사건 60건을 대상으로 심리학 전문가들과 심리적 부검을 진행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심리적 부검은 자살자의 생애를 되짚어가며 절망에 이르게 된 경로와 고통의 실체를 찾는 작업이다.

한국은 하루 평균 43명(2011년 기준)이 자살하는 나라다. 인구 10만 명당 31.7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다. OECD 평균은 인구 10만 명당 12.6명(2011년). 우리는 2003년부터 9년 연속 자살률 1위다.

자살률 세계 1,2위였던 핀란드는 1986년 국가 차원의 심리적 부검 프로젝트를 세계 처음으로 시도해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30.3명을 2012년 17.3명으로 줄였다.

취재팀은 자살의 씨앗이 폭력적인 가정에서 싹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부모의 가정폭력을 목격하거나 장기간 학대 및 방치된 사례, 결혼 후 남편한테 상습적인 신체·언어폭력을 당한 경우를 합치면 65%(39건)에 달했다. 가족 간 관계가 권위적이고 경직돼있어 교류가 적었던 사례도 63.3%(38건)였다.

가정폭력을 경험한 고인들은 어느 누구도 자신을 구출해주지 않았다는 무력감이 가슴 깊이 새겨져 있었다. 성장한 뒤 실직이나 채무누적, 이혼 등 고난이 닥쳤을 때 해결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쉽게 빠졌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증오해야 하는 딜레마에서 허우적대다 우울증 같은 정신적 후유증도 남았다. 이 때문에 가정 밖에서도 인간관계에 서툴렀다.

부모와 건전한 신뢰관계를 맺은 경험이 없어 주변의 호의도 잘 믿지 못했다. 고민이 생기면 나누지 못하고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자존감이 낮아 자기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마저 강했다.

대구의 한 30대 여성은 아버지의 학대 후유증으로 말을 더듬고 손을 떠는 강박장애를 안게 됐다. 처음엔 참아주던 남편도 이 증세를 볼 때마다 폭력을 휘둘렀다. 이 여성은 결국 자살했다.
어릴 적 가정폭력을 당한 남성 상당수는 폭력성향을 대물림 받았다. 이들은 아내와 자녀를 괴롭히다 외톨이가 됐고, 자살로 내몰릴 때까지 외면 받았다. 아버지가 폭력으로 가족을 휘어잡는 걸 봐온 사람은 자기 문제도 폭력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고비가 왔을 때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벗어나려 했다. 자살은 대표적인 자기파괴 행위다.

가족간 의사소통이 취약한 가정에서 자살이 많은 이유는 가족끼리 어려운 상황을 공유해본 적이 드물어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살 직전에는 소외감이 극도에 달하는데 성장과정에서 가족의 지지와 보살핌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자살을 더 쉽게 결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삭막한 가정일수록 서로의 감정에 무관심해 자살 충동을 느끼는 가족이 신호를 보내도 거의 알아채지 못했다. 어쩌다 힘들다고 토로했을 땐 "다들 그렇게 살아" "나도 힘들어" "이겨내야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심리적 부검을 통해 접한 고인들은 한 번 닫힌 대화창구를 좀처럼 다시 열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국내 처음으로 8개월에 걸쳐 체계적인 심리적 부검 연구를 진행했으며 이달 말경 최종 보고서와 함께 종합적인 자살 방지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신광영 기자neo@donga.com
손효주기자 hjson@donga.com



#자살#가정폭력#심리적 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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