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동서남북]쏟아지는 출판기념회의 씁쓸한 뒷맛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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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사회부
이기진·사회부
“정치하겠다는 이들로부터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이 오면 손부터 떨려요. 또 출판기념회 오라는 소린가 하고….”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귀가 따갑게 들은 얘기다. 기자 역시 대전 충남 세종지역에서만 50여 건의 연락을 받은 걸로 기억된다.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이들은 너도 나도 ‘저자(著者)’가 됐다. 6일을 마지막(출판기념회 개최 시한)으로 더이상 이런 일은 없겠지만 아직도 기분이 찜찜하다.

물론 정치를 시작한다거나, 세를 과시한다거나, 선거자금을 모으기 위해 출판기념회는 좋은 수단이다. 정치 신인에게는 짧은 시간에 얼굴을 알리는 데 그만한 이벤트가 없다. 또 법적으로 보장된 정치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국회의원이 아니고서야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칼만 안 들었지 사실상 책 든 강도’라는 말까지 듣고 있다. 무엇보다 대필자를 시켜 즉흥적으로 내는 책이 대부분이다. 얄팍한 생각, 일기장 수준에 그친 수필집, 의정보고서보다 약간 양만 늘린 활동집들이 제목만 그럴싸하게 포장돼 있다.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쉽게 수집할 수 있는 정보 등을 마치 자신의 미래 비전인 것처럼 바꾼 정도다. 심지어 사자성어나 경구 풀이 서적을 낸 경우도 있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방식도 가관이다. 한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직원들이 관내 업체와 유관 기관 등에 전화를 걸어 참석을 독려했다가 물의를 빚었다. 출판기념회 당일 관공서 휴게실에서 “얼마를 내야 하느냐”며 고민하는 공무원도 수차례 눈에 띄었다.

출판기념회 행사장에서도 기막힌 광경들이 목격된다. 저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이 동원한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를 줄 세워 의자에 앉히기도 한다. 눈도장을 찍기 위해 긴 행렬에서 기다리다가 악수할 차례가 되면 반드시 스마트폰을 꺼내 인증샷을 찍는다.

출판기념회에 다녀온 사람마다 “내용도 부실한 3000원짜리 책 한 권에 5만 원을 냈으니…” “경조사야 서로 나누는 의미라도 있지만 나 같은 사람이 책 낼 기회가 있겠느냐”며 불만을 보였다.

“허접한 출판기념회에 대해 ‘책 든 강도’라고 느꼈다면? 표로 응징할 수밖에….” 기자가 내린 해답이다.

이기진·사회부 doyoce@donga.com
#출판기념회#6·4 지방선거#선거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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