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공세에 부실제작 겹쳐 초유의 ‘교과서 광풍’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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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한국史’ 무더기 채택철회 왜?

전북 전주 상산고가 7일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을 철회하면서 현재까지 파악된 전국 고교 중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한 곳은 경기 파주 한민고와 경북 청송여고 2곳으로 줄었다. 이 중 한민고는 3월 개교 예정이라 아직 관련 문제를 논의할 기구가 구성되지 않은 상태. 이에 따라 학교 측은 개교 후 학교운영위원회 등 관련 기구가 생기는 대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반면 청송여고 측은 “학교 구성원들과 협의를 거쳐 정당한 절차를 밟았기 때문에 재선정할 계획은 없다”며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아닌 외부 압력에 의해 재검토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검정을 통과한 특정 출판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대대적인 철회 운동으로 일선 고교에서 채택이 취소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 이 같은 배경에는 이념 문제도 작용했지만 본질적으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부실 제작이 더 근본적인 이유라는 지적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지난해 8월 30일 국사편찬위원회 검정심의위원회를 통과한 이후 우편향, 친일적 서술, 사실 왜곡, 단순 오류 등으로 비판을 받았다. 역사학계에서는 “제주 4·3사건, 5·16군사정변 등을 미화했다”며 사관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자체 조사를 통해 지난해 11월 교학사에 대해 △일본의 입장이 반영된 한일합방 용어를 한일병합으로 변경 △일제 치하에서 애국지사들의 민족운동을 축소하는 등 오해를 일으키는 부분 수정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해산 과정에 대한 정확한 서술 등 8건의 수정명령을 내렸다. 수정명령 이후에도 교학사 교과서는 각종 의혹에 휘말렸다. 지난해 12월 16일 민족문제연구소는 “동학농민운동, 신흥무관학교를 서술한 부분은 인터넷 사이트를 그대로 베낀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학농민운동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 마당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된 한 역사교사의 수업교재를 짜깁기했고, 신흥무관학교는 인터넷 블로그 글과 유사하다는 주장이다. 축소·왜곡 지적도 나왔다. 1930년대 임시정부에 대한 서술을 누락해 임시정부가 중국 각지를 옮겨 다닌 장정을 서술하지 않고, 1940년대 한국광복군을 창설한 과정도 빼버렸다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이날 하루 종일 일부 고교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철회 과정과 교육부가 이들 고교를 특별조사하기로 한 것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새누리당은 전교조 등이 일선 고교의 자율적 선택을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간사인 김희정 의원은 원내대책회의에서 “야당과 전교조는 교과서 채택 과정에서 자행한 절차적 민주주의 훼손 행위를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교육부가 ‘교학사 교과서 구하기’에 나섰다고 맞섰다. 교문위 소속 민주당 간사인 유기홍 의원은 원내대책회의에서 “2001년 일본의 우익 역사 교과서인 후소샤 교과서가 시민단체의 채택 반대 운동으로 채택률이 0.038%에 그쳤을 때도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일삼은 당시 고이즈미 내각이 이 문제를 조사했다는 어떤 기록도 찾을 수 없다”며 “교육부의 특별조사 자체가 정치적 외압이고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교학사는 이날 오후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21부(부장판사 박희승)에서 열린 ‘교학사 교과서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 사건 첫 심문기일에서 “문제로 지적된 부분 중 9곳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심문기일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등 9명이 지난해 12월 26일 “교과서가 일제 침략을 정당화해 강제동원 피해자 및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인격권에 해를 입힌다”며 배포 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데 따른 것이다.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도 교과서 검정 승인은 유지되지만 교과서 배포와 판매, 구매가 금지돼 사실상 교과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조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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