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천도교 성지(聖地)’ 훼손 논란이 일고 있다. 천도교 전신으로 동학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1824∼1864)의 울산 유허지(遺虛址·울산시 지정 기념물 제12호)가 도로 개설로 원형 보존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 종교계와 문화계 등의 도로 노선 변경 요구에 울산시는 ‘수용 불가’라는 태도다.
‘울산 수운 최제우 유허지 보존회’ 등으로 구성된 영남지방 문화유산보존연합회(공동대표 이규정 전 국회의원 등 7명)는 수운 유허지 옆으로 지나가도록 설계된 옥동∼농소 간 도로(16.7km) 노선을 변경해줄 것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24일 울산시에 제출했다. 올 1월 공사를 시작한 이 도로는 2018년 12월 완공 예정. 연합회는 “이 도로의 중구 유곡동 구간은 수운 유허지와 12m까지 가깝게 설계됐다”며 “도로 개설 과정에서 유허지 훼손이 불가피할 뿐 아니라 향후 보존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적어도 100m 이상 떨어지도록 노선을 바꿔야 한다는 것.
또 도로가 되면 하루 2만2000대의 차량이 지나다녀 굉음과 매연, 분진 등이 유허지를 뒤덮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운 최제우 유허지 보존회 정의필 회장(울산대 교수)은 “유허지 옆 곡선도로를 직선으로만 변경해도 충분한 이격거리가 나온다”며 “연간 1만 명 안팎이 찾는 천도교 성지를 잘 보존하면 관광객도 더 많이 몰려들 것”이라고 말했다.
영남지방 문화유산 연합회 관계자는 “형체도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태화루는 500억 원을 들여 내년 4월 복원하면서 천도교 성지 옆으로 도로를 개설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문화행정”이라고 지적했다. 울산시는 “노선을 변경할 경우 혁신도시와 접한 야산을 모두 절개해야 하고 철탑 이설도 필요해 곤란하다”며 “유허지와 도로 사이에 큰 나무를 심고 방음벽을 설치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수운 유허지는 수운이 동학을 창시하기 전인 1854년부터 1859년까지 머물던 곳이다. 수운은 이곳에서 생활하던 중 1855년 천도(天道) 기본원리를 파악한 후 본격적인 구도생활에 들어갔다. 수운이 동학 포교를 하다 1864년 좌도난정(左道亂正)이란 죄목으로 처형당할 때까지 머문 경북 경주 용담정, 수배를 피해 은둔하며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저술한 전북 남원 은적암과 함께 대표적인 동학의 성지로 꼽힌다. 수운이 기거한 울산에는 초가가 복원됐고 마당에는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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