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譜學의 대가가 남긴 마지막 유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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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원한관계 등 연구 故 양만정 선생
호남 명문가에 얽힌 생생한 이야기 음성파일 20시간 분량으로 남겨
전주역사박물관 책 발간 계획

호남 보학의 대가 양만정 선생의 구술을 정리한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이 구술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전주역사박물관 제공
호남 보학의 대가 양만정 선생의 구술을 정리한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이 구술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전주역사박물관 제공
“서인의 거두 송강 정철(鄭澈)의 집안과 동인의 지도자였던 경함 이발(李潑)의 집안은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원수 척을 지게 돼 서로 혼인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발의 집안 아낙들은 정철이 미워 ‘철철철철’ 하며 칼질을 했다.”

호남 보학(譜學)의 대가인 양만정 선생(1928∼2013)이 생전에 전주역사박물관에 남긴 구술 기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명문가의 족보부터 원한 관계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양 선생의 보학 지식은 음성파일로 20시간이 넘을 정도로 방대한 양이다. 이 기록은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의 기획으로 양 선생이 별세하기 4년 전인 2009년 10월 21일부터 2010년 5월 14일까지 10차례에 걸쳐 구술을 받은 것이다. 전체 분량은 MP3 음성파일 12개와 DVD 영상자료 20장, 녹취록 173장(A4)이나 된다.

기록에는 신천 강씨부터 장수 황씨까지 가나다순으로 호남지역 명문가들의 가풍과 문과 급제자 수, 호남 지역으로 들어오게 된 내력, 집안 간 우호 및 원한 관계 등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 명문가의 생활상이 그대로 담겨 있다.

보학은 족보가 발달했던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학문으로 주요 씨족과 집안 내력, 주요 인물과 가문 간의 관계 등에 대한 지식을 뜻한다. 지금은 그 의미가 퇴색했지만 조선시대에 보학은 각 집안의 정치관계와 혼인관계, 사교계 처신법 등을 결정짓는 중요한 척도가 될 만큼 양반 사회의 기본 지식이었다. 지난달 별세한 양 선생은 일제강점기인 초등학교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보학을 배웠다. 그는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뒤 전북향토문화연구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양 선생의 평생의 노고가 담긴 ‘20시간의 기록’에는 호남지역 명문가들에 얽힌 이야기 등이 상세하게 남아 있다.

그는 기록에서 “‘호남의 4대 명문가’는 한양에서 호남으로 내려온 송강 정철의 ‘연일 정(鄭)씨’와 향교 문묘에 모셔진 현인 18명 중 한 명인 하서 김인후의 ‘울산 김(金)씨’, 퇴계 이황과 오랜 논쟁을 벌였던 고봉 기대승의 ‘행주 기(奇)씨’, 삼부자가 임진왜란 때 순절한 제봉 고경명의 ‘장흥 고(高)씨’를 꼽는다. 이를 ‘정김기고’라고 한다”면서 “이 중 장흥 고씨가 벼슬로는 제일 뒤처지지만 임진왜란에 의병을 일으키고 삼부자가 순절한 ‘충절’을 높이 사 호남의 최고 명문가로 뽑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의 기록은 범위가 호남지역에 국한된 한계가 있지만 양반 사회 전체를 조망하고 있어 중요한 기록문화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기록을 주관한 이동희 관장은 “양 선생이 뛰어난 기억력을 바탕으로 남긴 이 기록은 호남을 넘어서 조선시대 전반적인 양반 문화를 세세히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며 “앞으로 고증 작업과 자료 조사를 거쳐 책으로 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양만정 선생#전주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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