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검은말벌 확산 비상, 피해 어떻길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6일 20시 55분


코멘트
등검은말벌.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등검은말벌.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2003년 8월 말 부산 영도구 동삼동 고신대 캠퍼스의 한 건물에서 커다란 벌집이 발견됐다. 당시 대학원생이던 최문보 박사(34·현 영남대 생명과학과 연구교수)가 연락을 받고 현장에 갔다.

곤충학 전공이던 그는 말벌을 집중 연구 중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채집한 말벌은 최 박사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국내외 전문가를 통해 이 말벌이 아열대 기후인 동남아나 중국 남부에 주로 사는 종(Vespa velutina nigrithorax)임을 확인했다. 한국에서는 처음 발견된 종이다.

고신대에서 2, 3km 떨어진 곳에는 부산항이 있다. 이곳에 온 화물선을 통해 말벌이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됐다. 최 박사는 "말벌 등 곤충은 기온이나 습도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이 말벌이 한국의 겨울을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말벌의 적응력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불과 2년 만에 부산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2006년 최 박사는 말벌의 국내 출현 사실을 학계에 보고했다. 2008년 관련 연구에 나선 정철의 안동대 생명자원과학부 교수는 '등검은말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과 영남대 연구팀은 등검은말벌의 서식지가 영남 전역으로 확대됐으며 강원 전남까지 번지고 있어 10년 내에 남한 전체로 퍼질 것으로 보인다고 26일 밝혔다.

등검은말벌의 크기는 보통 2~3cm. 토종말벌 가운데 가장 크고 공격적인 장수말벌(4, 5cm)보다 작다. 하지만 벌집 한 개의 개체 수는 2000마리에 육박한다. 다른 말벌은 한 벌집에 많아야 1000마리 정도가 산다. 등검은말벌은 '인해전술'로 싸우기 때문에 다른 말벌과의 영역다툼에서 우세하다. 국내에는 토착 대형말벌류가 9종 가량 있는데 등검은말벌의 출현 이후 털보말벌 왕바다리 등 5종은 세력이 약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등검은말벌은 꿀벌을 즐겨 먹는다. '꿀벌 전문 사냥꾼'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장수말벌은 꿀벌의 집을 직접 공격하지만 등검은말벌은 날고 있는 꿀벌을 '공중납치'한 뒤 먹이로 삼는다. 동남아 중국 등지에서는 이미 꿀벌 피해가 심각하다. 2004년 프랑스에도 한국과 같은 종류의 등검은말벌이 유입돼 6년 만에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양봉농가가 큰 피해를 입었다. 지금은 스페인 포르투갈 등 인접 국가로 퍼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매년 10~20km의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 지난해 조사에서 경남북 대부분 지역과 강원 삼척에서 발견됐다. 올해는 전남지역 최초로 구례군 화엄사 근처에서도 발견됐다. 다른 말벌에 비해 도심 적응력도 뛰어나 부산 금정구에서 접수된 말벌 관련 119 신고 가운데 40%가량이 등검은말벌이었다.

등검은말벌의 침은 다른 말벌에 비해 독성이 더 강하지는 않다. 하지만 개체 수가 워낙 많아 집단 공격을 당하면 훨씬 위험하다. 산이나 숲에 갈 때면 화장품을 바르지 말고 벌집을 보면 무조건 피해야 한다. 만약 한두 번 쏘였다면 빨리 안전한 곳으로 피해 냉찜질을 하고 병원으로 가야 한다.

최 박사는 "그동안 벌에 쏘여 사망한 사고 중 등검은말벌에 의한 사고도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며 "바이러스 감염 등으로 꿀벌 피해를 입은 양봉농가에 더 큰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