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도를 수학도로… 과외 중개사이트 ‘강사 스펙 사기’ 극성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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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부모 속이는 사례 잇달아

서울 A대 천문우주학과를 다니는 김모 씨(22)는 과외를 구하기 위해 최근 인터넷 과외연결 업체를 찾았다. 명문으로 꼽히는 대학에 다녀서 그런지 학교와 학과 이름을 온라인으로 기입하자 이내 연락이 왔다.

업체 측은 “수학 선생님을 찾는 고등학교 남학생이 있는데 학부모가 수학과나 수학교육과 학생을 많이 선호한다. 소속을 수학과로 고쳐도 되느냐”고 물었다. 김 씨는 전공을 고치고 과외 일자리를 얻었다. 김 씨는 “죄송스럽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과외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가르치는 데 큰 영향이 없을 듯해 업체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얘기했다.

서울 B대 영어영문학과 재학생인 문모 씨(25) 역시 과외연결 업체를 통해 서울 양천구 목동에 과외 자리를 소개받았다. 유학을 준비하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을 가르치고 한 달에 100만 원을 받는 조건.

업체는 문 씨의 이력을 고치려 했다. 교환학생 이력을 추가하고 외국 유학 중에 개인지도를 한 경험이 있다는 내용을 넣자는 식이었다. 또 개인 블로그에 교육 관련 글을 연재하고 있다는 내용을 포함시키자고 했다. 문 씨를 ‘유학전문 과외교사’로 만들려는 의도였다.

학부모가 재학증명서를 요구해 ‘경력 세탁 과외’는 무산됐다. 입학 연도를 보면 교환학생으로 외국을 다녀오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날 것 같아 문 씨가 포기했기 때문이다. 업체는 재학증명서 학번을 고치자는 얘기까지 꺼냈다. 문 씨는 거부했다. 그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하나둘씩 쌓이고 보니 ‘범죄’라는 생각이 들어 동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인터넷 과외연결 업체가 과외교사 자리를 원하는 재학생이나 졸업자의 스펙을 조작하는 행태가 빈번하다. 과외 연결을 잘 성사시키거나 비용을 더 받으려는 의도에서다. 경력 과장이 아니라 경력 조작에 가까운 일이 벌어지는 셈이다.

문제는 경력 과장 또는 조작을 통해 더 많은 수업료를 받는 바람에 피해가 학부모와 학생에게 돌아간다는 점. 과외 연결이 성사되면 업체는 첫 달 수업료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챙긴다. 어떻게 하든 과외를 연결해야 수입이 생기니까 스펙 조작에 나서게 된다.

실제로 취재진이 구직자라며 인터넷 과외연결 업체에 의뢰하자 “이전에 영어학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고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스펙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자 “수업의 질을 떨어뜨리는 건 아니니까 괜찮다”고 이 업체 관계자는 대답했다.

서울 양천구의 학부모 안모 씨(41·여)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다는 업체의 소개만 믿고 지난해 월 60만 원을 주면서 영어 과외를 받게 했지만 알고 보니 미국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 두 달 만에 과외를 그만뒀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취재진이 온라인 업체 50곳을 무작위로 살펴본 결과 면접을 통해 구직자의 경력과 서류를 꼼꼼하게 확인하는 업체는 1곳에 불과했다. 이경자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상임대표는 “학부모가 선생님에게 경력을 입증해 달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업체가 말하는 학력과 경력사항을 직접 확인하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와의 공동기획입니다. 취재에는 학점교류생인 연세대 철학과 4학년 박정연 씨가 참여했습니다.
#강사스팩#과외중개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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