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기획/어린이집 왜 이 지경 됐나]<하> 믿고 맡기려면 이렇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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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료 현실화 주장 공개검증… 불량급식땐 인가 취소해야”
■ 전문가 10인이 말하는 대안

[어린이집, 왜 이 지경 됐나] 믿고 맡기려면 이렇게
‘아동 허위 등록, 유령교사 급여 주기, 불량급식, 특별활동비 부풀리기….’

민간 어린이집의 ‘백화점식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아무리 수사하고 규제를 강화해도 결국은 또 다른 비리가 생길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현재 어린이집 부실운영 문제는 주로 민간 어린이집에 집중되고 있지만 민간 어린이집이 100만 명이 넘는 아이들의 보육을 책임지고 있어 정부 차원의 강력한 제재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전국 4만3000여 개 어린이집 가운데 민간 어린이집의 비중은 87%(3만7375개)에 달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민간 어린이집이 집단 휴원이라도 하면 그야말로 ‘보육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며 조심스러워할 정도다. 전문가 10명이 제시하는 대안을 간추려 봤다.

○ 보육료 인상 vs 규제 강화

민간 어린이집 운영자들은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보육료 지원이 부족해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고 각종 비리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한목소리로 주장했다. 반면 정부는 각종 세제 혜택과 기본보육료, 교재·교구비 등을 지원하고 있는 만큼 부실 운영을 막을 수 있는 규제 강화가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김용하 전 보건사회연구원장=민간어린이집연합회의 보육료 현실화 주장을 공개 검증해야 한다. 정부는 ‘현재의 보육료로도 시설 유지가 충분하다’고 하지만 민간 어린이집 측은 ‘보육료를 늘리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문제를 제기해도 생산성 있는 논의가 되지 않는다. 정부부처와 보육공무원, 민간어린이집연합회가 한자리에 모여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민간 어린이집에 대한 규제와 처벌을 강화해도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

▽백혜리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대형 민간 어린이집의 경우 초기 투자비용으로 많게는 수억 원의 자금을 투자해야 한다. 이자를 생각하면 적법하게 운영할 때 자기 자본을 까먹는 셈이 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편법을 쓸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틀린 말이 아니다. 이자 부담이 큰 곳에 대해서는 초기설치비용에 대한 이자 일부를 보전해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뒷주머니’ 막을 방법은?

4세와 2세 두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박미정 씨(29)는 “매달 12만 원씩 특별활동비를 내고 분기별로 20만 원 정도 현장학습비와 실습비를 낸다. 하지만 이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 방법이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학부모들은 보육료가 온전히 아이를 위해 쓰이는지, 충분한 교육을 받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김종해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특별활동비나 유령교사, 허위 아동 등록 등은 지방자치단체 보육 공무원들의 감시만으로는 막기 어렵다. 민간 어린이집 수에 비해 지자체의 담당 공무원은 너무 적다. 보육교사들의 제보나 학부모들의 모니터링이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고자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민간어린이집연합회는 ‘신고포상금제도 확대는 내부 불신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그러나 아동과 교사를 허위로 등록한 어린이집이 적발되면 각종 지원을 일정 기간 중단하거나 과징금을 물리는 등의 벌칙을 마련해야 부정부패가 사라진다.

▽장상환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학부모와 지자체 보육공무원이 어린이집 수입·지출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민간 어린이집마다 학부모들이 참가하는 운영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면 교재·교구비 등 공동구매 품목에 대해 학부모들이 직접 결정할 수 있다. 여기에 민간 어린이집 원장의 권한을 최대한 축소시켜야 각종 횡령을 막을 수 있다.

○ 단호한 규제로 불량 급식과 아동학대 막아야

본보 취재 과정에서 만난 민간 어린이집 원장 대부분은 식자재비를 ‘얼마든지 아낄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음식이라면 더 비싸고 좋은 재료로 만들어 먹이려는 부모들과 정반대였다. 아동학대도 뚜렷한 문제의식 없이 단순히 교사 개인의 문제로 여겼다. 아동을 학대한 교사를 데리고 있던 원장조차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며 고개를 저었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아이들의 먹을거리에 대한 규제는 어떤 것보다 단호하고 강력해야 한다. 남은 음식을 재사용하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를 쓰는 등의 위법적 요소가 발견되면 즉시 해당 어린이집 인가를 취소해야 한다. 어린이집 설치·운영자에게 의무적으로 건강 영양 안전 관리 교육을 받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문희 육아정책 연구소 선임연구위원=아동학대 가해 교사는 자격을 취소하고 재취업을 막아야 한다. 다만 보육교사들의 처우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 현재 민간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평균 월급은 노동 강도에 비해 너무 낮은 수준이며 국공립 어린이집 교사와 비교해도 30만∼40만 원 정도 낮다. 업무 스트레스도 상당한데 사기를 높일 수 있는 지원이 없는 실정이다.

서동일·곽도영 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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