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委 보고서 있다고 국가 손배책임 인정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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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진도 보도연맹사건’ 파기환송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16일 6·25전쟁 당시 인민군 점령기에 부역한 혐의로 경찰에 끌려가 행방불명되거나 사살된 ‘진도 국민보도연맹사건’의 유족들이 “4억4000여만 원을 배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유족들이 승소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력한 증거자료가 되지만, 진실규명 결정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대상자가 국가에 의한 희생자로 확정되고 국가에 불법행위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조사보고서만으로는 주민 살해 사실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는데 원심 판결은 심리를 충분히 하지 않아 위법하다”고 밝혔다.

1·2심 재판부는 2009년 4월에 나온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을 근거로 “진도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망인들을 사살했다”며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들에게 각각 1300만∼8800만 원을 위자료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조사보고서에 참고인 진술이 기재돼 있지만 신원이 특정되지 않았고, 망인 시신이 수습된 적 없으며 망인 중 한 명에 대해서는 희생자로 추정하는 결정을 하는 데 그쳤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을 통해 6·25전쟁 이후 과거사 사건 피해자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하는 손해배상 소송의 심리·판단 기준을 공개했다. 우선 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피해자나 유족만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처럼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보고서에 모순이 있거나 구체성이 부족할 경우 법원은 추가 증거조사를 통해 국가에 의한 희생자인지 개별적으로 심리해야 한다.

또 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희생자라는 결정을 받은 날로부터 3년 내에 국가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대법원은 피해자 간 형평성을 위해 위자료 액수는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사건의 액수와 균형을 맞출 것을 강조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과거사 관련 국가배상 청구소송의 사실 인정 여부와 소멸시효, 위자료 산정에 대한 법원별 편차가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과거사#국가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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