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5명중 1명 “훈계 들으면 대들고 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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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마포지역 100명 설문조사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의 주장 이현호(33)가 14일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중고생을 때린 혐의로. 이현호는 고개를 숙였다. “이유야 어쨌든 물리적으로 대처한 건 내 잘못”이라면서. 그런데….

대중의 반응은 의외다. 그를 감싸는 분위기다. 계속된 영웅 대접에 당사자가 오히려 “당황스럽다”고 할 정도다. 심지어 이현호에게 맞은 일부 아이의 부모까지 나서 감사의 말을 전했다. “때려줘서 고맙다”며. 왜 그랬을까. 폭력을 행사했는데?

○ 훈계에 불만… 폭행 방화 살인까지

이현호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대놓고 담배 피우던 10대들에게 한마디했다. 아이들이 “아저씨, 돈 많아요?”라며 비아냥거리자 참다못해 ‘꿀밤’ 수준으로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걸 자리에 있던 여학생이 경찰에 신고했다.

언제부터일까. 당연한 훈계가 화제가 될 만큼 훈계하기 무서운 시대가 됐다. 연장자의 권리이자 의무인 훈계. 이젠 어른에겐 불안하고, 아이에겐 성가신 행동이 됐다.

어른이 훈계하길 꺼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예전과 달라진 아이들의 반응 때문이다. 지난날에는 묵묵히 받아들였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예민하다 못해 살벌해졌다. 아파트 경비원 A 씨는 말했다. “아파트 주변에서 손자뻘 되는 학생들이 담배를 피웠다. 피우지 말라고 했더니 밤마다 찾아온다. 경비실에 벽돌을 던진다. 무서워서 이젠 담배 피우는 걸 보고도 못 본 척한다.”

실제로 훈계하던 어른은 자주 봉변이나 해코지를 당한다. 3일 제주에서 중학생 A 군(16)이 난동을 부렸다. 소지품 검사를 하던 담임교사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발견하고 나무라자 갑자기 소화기를 집어 들고 뿌렸다. 경찰이 오고서야 사태가 진정됐다.

지난달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선 집단폭행 사건이 있었다. 술 마시며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고 이모 씨(21)가 한마디 하다가 박모 군(14) 등 2명에게 얻어맞았다. 이 씨는 코뼈가 부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

더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2월 전남 강진에선 고교생 B 군(18)이 만취한 상태로 한밤중에 여자친구의 집에 찾아갔다. 이별을 통보받은 뒤였다. 여자친구는 집에 없었다. 그녀의 부모가 한마디 하자 홧김에 흉기로 찔렀다. 여자친구의 아버지는 숨지고 어머니는 크게 다쳤다.

○ 충동의 시대… 훈계를 참지 못해

서울 마포구에 사는 고교생 100명에게 취재팀이 물어봤다. 훈계 들으면 대들고 싶은지. 19명이 그렇다고 했다. 5명 중 1명꼴로 훈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셈. 그 가운데 5명은 “훈계를 들으면 폭력 충동까지 느낀다”고 답했다. 훈계 자체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100명 가운데 26명이 “나이 많아도 훈계할 자격은 없다”고 했다.

과거엔 훈계를 들으면 움츠러들었다. 적어도 잘못은 인정했다. 요즘 10대는 오히려 큰소리칠 때가 많다. 서울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쌍방 폭행은 어른에게 불리하다는 걸 알 만큼 애들이 영악하다. 왜 때리느냐고 대드는 경우가 늘었다”고 했다. 강남경찰서엔 훈계에 반발하다 어른과 시비가 붙어 조사받은 10대가 올해에만 20명이 넘는다.

최근 여론조사업체 설문에서 고교생들은 ‘행복의 조건’ 1순위로 돈, 그 다음으로 성적을 꼽았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10대의 사고방식이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낳았다. 결과적으로 자신만 생각하는 사고가 훈계를 참견으로 여기게끔 만든 기제”라고 했다.

18세 이하 청소년 범죄 가운데 강력, 폭력사건 비중은 점차 늘어 30% 수준에 이른다. 그럼에도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일 때가 많다. 10대는 훈계에 콧방귀를 뀌는 반면에 어른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충동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인내심이 없는데 이는 특히 청소년에게 심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적으로 충동 제어장치가 무너진 가운데 10대는 외부 자극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훈계를 듣고 인내할 만한 여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훈계#고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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