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NS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없는 비명’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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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들 우울한 감정 수시로 표현, 부모가 민감하게 반응하면 역효과

13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중3 최모 양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카카오스토리’에 올라온 사진과 글을 보고 있다.
13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중3 최모 양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카카오스토리’에 올라온 사진과 글을 보고 있다.
《 서울에 사는 유모 씨(48)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카카오스토리’의 친구로 등록돼 있던 중학 3학년 딸 최모 양에게 일방적인 ‘차단’을 당했다. 그동안 딸이 스마트폰 메신저 서비스인 ‘카카오톡’에 쓴 상태메시지와 카카오스토리에 있는 사진과 글을 통해 딸의 근황과 생각을 가늠해온 유 씨는 충격에 빠졌다. 그동안 딸이 카카오톡의 상태메시지로 ‘엄마 생일 축하해, 공부 열심히 할게’라는 메시지도 남겼던 터라 ‘SNS를 활용해 딸과 소통을 잘하고 있다’고 자부해 왔기 때문이다. 》

유 씨는 “아이가 카카오톡 상태메시지에 ‘후회’, ‘힘들다’ 같은 내용을 올렸기에 걱정이 돼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을 뿐인데, 왜 차단까지 했는지 모르겠다”며 섭섭해했다.

하지만 딸의 생각은 달랐다. 최 양은 “엄마가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내용을 보고 ‘대화 좀 하자’며 하나하나 캐묻기 시작했다”면서 “심지어 친구랑 댓글로 대화한 내용을 보고 있다는 걸 안 뒤론 엄마에게 감시당하는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

최근 중고교생 사이에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스마트폰 메신저나 SNS를 자녀와의 소통 창구로 활용하려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 특히 학교폭력 등 청소년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학부모들이 SNS 등을 통해 자녀의 일상과 심리상태를 파악하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유 씨의 경우처럼 사소한 실수로 자녀와 어렵게 구축해 온 관계마저 무너질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학생들은 부모가 스마트폰 메신저 상태메시지 등에 민감하게 반응할 경우 반발심에서 ‘관계를 차단’하거나 내용을 암호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곤 한다.

감정상태나 근황 은유적으로 표현


많은 중고생은 자신의 감정을 스마트폰 메신저 상태메시지와 SNS 등에 은유적으로 표현하곤 한다. 스마트폰 상태메시지에는 ‘후회’ ‘두려움’ ‘죄책감’ 등 부정적 의미의 단어를 써서 자신의 감정상태를 슬쩍 내비치는 것.

전남의 고교 1학년 김모 양(17)은 “친구들이 은근히 자신을 따돌려 힘들어하던 친구는 ‘요즘 학교 공부하는 것도 힘들고…’처럼 써놓는다”면서 “‘왕따’처럼 직접적인 표현은 쓰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경기지역에 사는 중학 3학년 최모 양(16)은 “평소에 스마트폰 메신저 프로필 사진과 상태메시지를 꾸준히 올리던 친구가 돌연 사진과 메시지를 모두 지웠다면 우울하고 힘들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부모가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친구들끼리만 알아보게 쓰는 학생도 많다. ‘ㅇㅈㅉㅈ(완전짜증)’ ‘ㄲㅈ(꺼져)’처럼 초성으로 감정상태를 표현하는 게 그 가운데 하나다.

충북지역의 고교 1학년 이모 군(17)은 “친구 가운데 대부분이 하루에도 수 차례씩 자신의 감정상태에 따라 스마트폰 메신저의 상태메시지를 바꾼다”고 말했다.

올린 내용 보고 바로 물으면 역효과

학생들은 자신이 스마트폰 메신저에서 바꾼 프로필 사진과 메시지를 보고 부모가 곧바로 ‘무슨 일이 있느냐’ ‘지금 어디에서 뭐하느냐’고 묻는 것이 싫다고 입을 모은다. 부모의 이런 행동을 감시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중학 2학년 유모 양(15·부산 동래구)은 “카카오톡 대화명에 ‘내일은 맑겠지’라고 써놓았더니 엄마가 ‘왜 그러니?’라고 물어봐서 당황스러웠다”면서 “친구들이랑 얘기하고 싶어서 써놓은 건데 엄마가 물어봐서 내용을 바로 지워버렸다”고 말했다.

대전지역 고교 2학년 김모 양(18)은 “눈물을 상징하는 이모티콘인 ‘ㅠㅠ’ ‘유ㅅ유’를 쓰면 많이 힘들다고 오해하는 부모들이 많지만 정작 우리는 ‘가벼운 슬픔’ ‘안타까움’ 정도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내용을 보고 어른들이 바로 물어보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서울지역 중학교의 박모 교사는 “대부분의 학생은 부모가 자신의 상태메시지 등을 보고 있다고 느끼면 오히려 감정을 감추기 쉽다”면서 “자녀가 쓴 특정 내용은 가능하면 언급하지 말고 시간이 좀 지난 뒤 돌려서 근황을 물어보는 편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태윤·이강훈 기자 wo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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