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포비아가 되레 불임 유발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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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40 여성 불임공포 확산

최근 결혼한 직장여성 이모 씨(33). 며칠 전 친구 모임에 나갔다가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친구들이 꾸벅꾸벅 고개를 떨어뜨리는 것.

직장일과 가정생활을 모두 잘하려다 보니 피곤해 그런가 싶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배란유도제 복용에 따른 부작용이었다. 오랫동안 아이가 없는 친구야 그렇다 쳐도 결혼한 지 1년도 안 된 친구마저 약을 먹는다는 사실에 이 씨는 깜짝 놀랐다. “왜 벌써부터 약을 먹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충격이었다. “요즘 가임기 부부 10쌍 중 1쌍 이상이 불임이래. 우리처럼 서른 넘어 결혼하면 서둘러야 해. 너도 빨리 병원 가봐.”

아이를 가지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이른바 ‘불임 포비아’가 최근 신드롬처럼 번지고 있다. 여성들이 자주 찾는 웹사이트에도 불임을 한탄하는 글이 넘쳐난다.

“숙제 다 했는데 증상놀이만 하다가 이번에도 한 줄이네”처럼 암호 같은 글도 많다. ‘숙제’는 부부관계, ‘증상놀이’는 감기와 비슷한 임신 초기 증상, ‘한 줄’은 임신 테스트를 했는데 임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늦은 결혼과, 그에 따른 고령 임신이 늘어난 것이 불임 포비아가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2011년 기준 여성의 평균 초혼연령이 29.1세. 30세 넘어 결혼하는 여성은 부지기수고 40세를 넘겨 결혼식을 올리는 여성도 흔해졌다. 하지만 여성의 난소 기능은 35세 전후로 떨어지기 시작해 40세 이후 급격히 떨어진다. 이 때문에 임신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면서 ‘임신이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불임 포비아로 이어지는 것.

그 덕분에 불임클리닉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김미경 대구차여성병원 시험관센터 교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 등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불임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가 약 3.7배 증가했다”며 “특히 40대 환자 비율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제일병원 불임클리닉도 지난해 환자 수가 2011년에보다 약 30% 증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불임에 대한 걱정과 공포 자체가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이런 불임 포비아가 오히려 불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불임 걱정이 스트레스로 이어지면 배란장애와 나팔관 및 자궁 경련을 일으킬 수 있다. 지난해 9월 유럽생식의학회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젊은 여성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으면 난소 기능이 빠르게 감소해 폐경이 앞당겨질 수 있다.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스트레스를 준 실험군의 착상률이 57.5%인 반면에 스트레스가 없는 대조군의 착상률은 74.3%였다.

김 교수는 “불임에 대한 스트레스가 불임의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는 많다. 지나친 걱정이 오히려 화를 부르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산부인과 전문의들도 “만혼이라 해도 미리미리 병원에서 임신을 착실히 준비하면 훨씬 성공률이 높다”고 강조한다.

양광문 제일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여성의 나이가 35세 미만이면 1년, 35세 이상이면 6개월간 피임하지 않고 부부관계를 가졌는데 임신이 안 될 경우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밝혔다. 양 교수는 “불임의 원인을 몰라 끙끙 앓는 것보다 명확히 알고 치료를 받는 게 이 같은 불임 포비아를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민경진 인턴기자 부산대 국문학과 4학년  
#불임#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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