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영혼이 멍드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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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1일 15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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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고 굶기고 아동학대 증가, 한 해 1만여 건 신고접수

신체 학대로 머리털이 빠진 아이.
신체 학대로 머리털이 빠진 아이.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3년 1월 15일자 87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1 경기 ○○시(지역은 기관 측 요청으로 공개하지 않는다). 10년 전 남편과 사별한 부인은 딸 넷을 홀로 키우며 상가 건물에서 살았다. 하지만 큰딸이 고등학생 때 낙태수술을 받자 엄마는 변하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 개와 고양이를 발견하면 무작정 집으로 데려왔다. 쓰레기도 들고 왔다. 큰딸과 둘째 딸은 집을 나간 지 오래. 결국 엄마는 중학생인 셋째 딸, 초등학생인 넷째 딸, 그리고 고양이 6마리, 개 27마리와 1년여 동안 살았다. 문제는 건물임대료가 밀려 전기는 물론 수도까지 끊기자 엄마가 밥도 제대로 주지 않으며 두 딸을 방치했다는 점. 결국 동물 소음과 배설물 냄새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민원을 접수했다.

#2 경기 ○○시. 엄마는 늘 술에 취해 있다. 돌을 갓 지난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두 번 찾아오는 도우미에게 술주정을 한다. 도우미에 따르면, 아이 엄마가 아이를 때린 적도 있고 방에 가둔 적도 있다고 한다. 아이 아빠는 전처와 이혼하지 않았지만, 아이 엄마와 사실혼 관계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출생신고도 돼 있지 않다. 엄마가 아이를 심하게 때렸거나 방치했다면 아이와 격리할 수 있지만, 기관에서 조치를 취하기에는 애매한 상태. 주변인이 기관에 신고해 기관 관계자가 현장을 찾아가 방바닥에 떨어진 라면을 먹는 아이를 목격했으나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3 경기 ○○시. 엄마는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인 딸들에게 모든 관심이 쏠려 있다. 하물며 이마나 볼에 난 여드름까지 신경 쓴다. 엄마는 여드름을 자신이 치료해야 한다며 손으로 짠다. 상처가 덧나 딱지가 생기면 엄마는 그 딱지를 뜯고, 식초 등으로 자가 치료를 시도한다. 결국 두 딸 얼굴은 화상 입은 사람처럼 흉하게 변했다. 이런 아내를 남편은 맥없이 바라볼 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엄마는 딸들이 1년 365일 내내 된장국과 밥 두 공기를 먹지 않으면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행여 딸들이 반항하면 사정없이 때렸다. 결국 딸들은 가출해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찾았다.



방바닥에 떨어진 라면 주워 먹어

앞에 언급한 사례들은 최근 굿네이버스 경기도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아동학대 사건이다. 경기도는 1200만 명에 이르는 인구 밀집 지역으로, 아동학대 발생률도 높은 수준. 언뜻 보면 앞의 세 사건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엄마가 자녀를 학대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세 사건이 엄연히 달랐다. 첫 사건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측에서 엄마를 ‘설득해’ 정신병원에서 6개월 동안 입원치료를 받게 했고, 지금까지 통원 치료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갓난아기를 방치한 엄마는 수사기관에서 문제로 여기지 않아 어떤 조치도 받지 않았다.

아이 여드름에 집착한 엄마의 경우, 기관 관계자가 심리 검사를 권유하자 “나는 문제없다”며 완강히 치료를 거부했다. 결국 기관은 여드름에 집착하는 엄마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고, 검찰 측에서 상담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뒤에야 교육을 받았다. 다행히 이 엄마는 이례적으로 검찰 처분을 통해 교육을 받게 됐지만, 대다수는 치료 등을 받지 않는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아이를 학대하는 행위자 대부분은 부모인데도 현재 아동복지법에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행위자에 대한 교육이나 치료를 강요할 수 없게 돼 있어 현장을 개선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아이가 더는 학대받지 않게 하려면 학대 행위자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현재로서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이 정도는 사건이 안 된다’며 훈방 조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관과 경찰 간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큰 것입니다.”

신체 학대를 당한 아이의 상처.
신체 학대를 당한 아이의 상처.
부모 학대가 83.1%

한편 학대 아동 일시 보호시설에 대한 지원도 부족하다. 학대당한 아이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운영하는 시설에 머물지만, 그 기간에 정부로부터 합당한 지원을 받지 못한다. 정부는 이 시설에 운영비로 월 23만 원을 지원할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곳에서 심리치료를 기대하긴 어렵다. 게다가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담당해야 할 아동 수가 너무 많다. 보건복지부의 ‘2011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1개 아동보호전문기관(전국 45군데)이 담당하는 아동 수는 평균 22만190명이다.

이에 대해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는 “학대 발생 건수에 비해 훨씬 적게 신고되는 이유는 학대에 대한 국민 인식이 낮은 이유도 있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 수가 너무 적기 때문”이라면서 “양극화 등으로 점차 심화될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지난 10년간 3배 이상 증가한 상태. ‘2011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전국 45개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해 아동학대 신고로 접수된 사례는 총 1만146건이고, 그중 아동학대로 의심되는 사례는 8325건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현장조사를 실시한 결과 아동학대로 판정된 사례는 6058건(72.8%), 잠재위험사례 745건(8.9%), 일반사례 1522건(18.3%)이었다. 아동학대를 유형별로 파악한 결과 중복학대가 2621건(43.3%)으로 가장 많았고, 방임 1783건(29.4%), 정서학대 909건(15%), 신체학대 466건(7.7%), 성학대 226건(3.7%), 유기 53건(0.9%)으로 나타났다.

아동학대로 판정된 아동학대 사례 기준으로 피해아동의 성별 분포를 살펴본 결과 남아 3069명(50.7%), 여아 2989명(49.3%)으로 비슷했다. 피해아동 연령은 만 10~12세가 1447건(23.8%)으로 가장 많았으며, 만13~15세 1317건(21.7%), 만 7~9세 1105건(18.3%)이었다. 피해아동은 반항, 충동, 공격성, 거짓말, 도벽 같은 특성을 가장 많이 보였다(5348건·37.4%).

학대 행위자를 보면, 부모에 의해 발생한 아동학대가 5039건(83.1%)으로 가장 많았고, 친·인척 349건(5.8%), 타인 574건(9.5%)이 뒤를 이었다. 성별은 남성 3442건(56.8%), 여성 2606건(43%)으로 여성에 비해 남성이 많았다. 학대 행위자의 직업은 무직이 1503건(24.8%)로 가장 많았으며, 단순노무직 829건(13.7%), 전업주부 692건(11.4%) 순으로 나타났다. 아동학대 행위자와 피해아동이 동거하는 경우는 4739건(78.2%). 학대 장소가 가정인 경우는 5246건(86.6%)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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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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