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마이스터고 이색합격자들 “우직하게 고졸신화 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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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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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끄는 이색합격자들

《 전국 특성화고(475개교) 대부분이 내년 신입생 원서접수를 시작한다. 서울 충북 세종은 21일 부터, 경남은 22일부터, 대전과 강원은 26일부터다. 지난달 합격자를 발표한 마이스터고 35개교의 평균 경쟁률은 2.88 대 1이었다.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의 인기가 높아지며 지원자가 늘어나는 추세. 내년에 입학하는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 평해공고 가는 이창민-성민 쌍둥이

9시간. 쌍둥이 형제 이창민(사진 왼쪽) 성민 군(15)이 평해공업고(경북 울진)까지 버스를 타고 갈 시간이다. 인천에 사는 형제는 340km나 떨어진 학교에 가기로 결심했다. 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인천학생과학관에 자주 갔다. 여러 실험을 했지만 가장 재미난 건 ‘에너지’였다. 풍력 조력 파력에 관한 실험을 할 때 눈이 반짝거렸다. 울진원자력본부에 가고 나서부터는 원자력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8월 코엑스에서 열린 ‘2012년 국가 원자력 연구개발 성과 한마당’을 보고 형제는 결심을 굳혔다. 평해공업고에 가겠다고. 국내 최초의 원자력발전설비 분야 마이스터고로 내년에 개교한다.

부모는 망설였다. 아버지 이승규 씨(50)는 “내가 경영 컨설턴트지만 아이들이 마이스터고에 진학한다는 걸 인정하기 어려웠다. 집안에 대학 안 가겠다는 아이가 없는 데다 사회 분위기도 그렇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인천 정각중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형제의 성적도 아까웠다.

학교가 먼 점도 걱정이었다. 가까운 곳의 마이스터고를 권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형제는 확고했다. “원자력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거니까 꼭 평해공업고에 갈래요.”

그러고는 스크랩한 신문 기사를 아버지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안 된다고 걱정한대요. 먼저 취업해도 나중에 사이버대나 재직자 특별전형을 통해 언제든 공부할 수 있어요. 걱정 마세요.” 형제는 오랜 경험을 쌓은 뒤 후배 사원을 양성하는 사내 교수가 되려고 한다.
■ 울산마이스터고 가는 천영준 군

“대학만 가면 네가 원하는 삼성전자에 바로 취업할 수 있을 것 같아?” 천영준 군(15·울산 현대중·사진)에게 형이 한 말이다. 울산마이스터고 1기로 학생회장까지 맡은 형은 고려아연㈜에 취업해 4주째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영준 군은 과학고에 진학하려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한국수학올림피아드를 봤다. 하지만 과학고 입시가 입학사정관제로 바뀌며 외부 수상실적을 반영하지 않게 됐다. 계획이 틀어진 그는 성균관대를 졸업한 뒤 삼성전자에 취직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형이 다니는 학교의 학생들을 봤다. 1학년 2학기 때 삼성전자, 2학년부터 한국수력원자력 현대자동차 포스코 현대중공업의 면접을 보러 다니는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랐다. 얼마 후 그는 울산마이스터고 진학을 결심했다.

어머니 박미영 씨(41)는 서운했다. 큰아들을 마이스터고에 보내고 ‘정말 괜찮은 일꾼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도 말이다. 주변에서도 “큰애 하나면 됐지, 과학고까지 준비했던 애를 뭐 하러 마이스터고에 보내느냐”고 걱정했다.

박 씨는 주변을 살폈다. 1, 2등만 하다 대학에 가도 직장을 못 구해 졸업을 미룬다는 자녀를 둔 부모가 많았다. 마이스터고에 가서 열심히 하면 원하는 일자리를 골라 갈 수 있다는 믿음은 큰아들을 통해 이미 갖고 있었다.

박 씨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 고졸자라는 이유만으로 직급이나 월급에서 차별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

그는 “이런 차별을 바로잡지 않으면 마이스터고가 무의미해진다”고 말했다.
■ 구미여상 가는 박소정 양

“아니요. 전 고등학교 때부터 제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싶어요.” 경북 상모중 3학년 박소정 양(15·사진)이 구미여상에 원서를 낸 이유다. 반대가 심했다. 온통 말리는 사람뿐이었다. 상위 10% 이내였던 박 양의 성적 때문이었다.

박 양은 처음부터 대학에 꼭 가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고졸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너무 심하다고 느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걸 내가 꼭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차피 회계사나 경영 관련 일을 하고 싶은 거라면, 돌아가기 싫었다. 인문계고에 가서 대학에 진학한 뒤 취업하는 건 돈과 시간 낭비라고 봤다. 박 양은 초등학교 때부터 국가공인 정보기술자격(ITQ) 워드프로세서를 포함해 이미 웬만한 자격증은 다 땄다.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건 아니지만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초등학교 4학년)을 생각했다. 박 양이 대학에 가면 동생은 중학생이다. 중학생 교육비도 만만치 않음을 박 양은 잘 안다.

박 양은 특성화고 졸업 뒤 바로 취업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뒤 대학 진학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당찬 포부가 있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 사람들이 고졸자를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것.

박 양은 말했다. “기업 공채에서도 고졸자 대졸자를 나누고, 월급에 차이가 있잖아요. 학벌이 아니라 사람 자체만 보고 평가했으면 좋겠어요. 고졸자를 키우는 정책이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해요.”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특성화고#마이스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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