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수험표 5만원” 떨이로 팔리는 개인정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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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성형 할인 챙기려 인터넷서 사고팔기 기승
“신상정보 광장에 뿌리는 짓” 주민번호 악용 범죄 빈발 사진 바꾸면 공문서 위조죄

인터넷 중고물품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수능수험표 판매글. 인터넷 화면 캡처
인터넷 중고물품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수능수험표 판매글. 인터넷 화면 캡처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박모 군(18)은 최근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표를 팔았다. 수험표를 팔면 4만∼5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친구들로부터 듣고 중고품 거래 사이트에 ‘수험표를 판다’는 글을 올리자 곧 5, 6곳에서 연락이 왔다. 박 군은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느니 용돈이라도 받는 게 좋겠다 싶어 수험표를 팔았다”고 했다.

8일 수능이 끝나자 인터넷 포털사이트 중고물품 거래 카페 등에서는 수능 수험표를 사고팔겠다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수험생을 대상으로 수험표를 들고 오면 각종 할인을 해주는 이벤트가 쏟아지자 이를 활용하기 위해 시험을 치르지 않은 대학생 등이 수험표를 사려고 몰리는 탓이다.

14일 온라인 중고카페에서는 수능 당일 밤부터 올라온 ‘94년생, 수험표 팔아요’ ‘수험표 가격 제시하면 팔아요’라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은 “할인 이벤트를 펼치는 곳은 대부분 백화점이나 비싼 음식점 등인데 (할인을 해도) 고3이 그런 곳에 갈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아 쓸모가 없다”며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수험표를 판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험표를 파는 일은 개인정보를 스스로 유출하는 ‘무모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수험표에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는 물론이고 얼굴 사진과 출신 학교까지 적혀 있어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각종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출된 주민등록번호는 손쉽게 범죄에 악용된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달 18일 중학교 동창생의 주민등록번호를 알아낸 뒤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증발급신청서를 발부받고, 이를 이용해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뒤 2500만 원가량을 대출받아 가로챈 이모 씨(25)를 구속했다. 9일에는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비공개 카페를 만들고 10대 여학생들에게 음란 동영상을 유포한 남성이 경찰에 붙잡히는 등 주민등록번호 도용 범죄는 꾸준히 늘고 있다. 새누리당 진영 의원에 따르면 주민등록번호 도용 등 주민등록법을 위반한 범죄자는 2008년 1821명이었지만 지난해에는 2924명으로 늘었다. 올해에도 8월까지 2247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악용 우려에도 수험생 등 청소년들의 개인정보 중요성 인식 수준은 아직 낮다. 자신의 수험표를 판매한 뒤 같은 반 친구들의 수험표까지 팔아주고 있다는 김모 군(18)은 “수험표를 파는 친구들 대부분은 주민등록번호 등이 적혀 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은 “수험표를 파는 것은 공개된 장소에 본인의 신상정보를 뿌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개인정보의 중요성과 유출됐을 때의 위험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험표를 사는 일도 쉽게 범법행위로 이어진다. 수험표 구입 자체는 문제될 게 없지만 이를 사용하기 위해 사진이나 이름을 바꾸면 공문서 위조변조죄가 돼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수험표는 발급 기관에서 본인 증명을 위해 직인을 찍어 만든 문서”라며 “이를 위조해 할인혜택을 받는 것은 위조 공문서 사용죄에도 해당하고, 할인 이벤트를 하는 기업을 속이는 행위도 돼 사기죄까지 성립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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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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