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나의 NIE]매일 아침 펼치는 지면에서 창작의 영감 샘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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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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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세민 ‘창조적 소수’ 아트스튜디오 대표

신문을 들자마자 이리저리 헤집는다. 늘 문화면으로 손이 먼저 간다.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다. 전시 단신 역시 허투루 보는 법이 없다. 지면을 통해 만나는 다른 작가의 소식이 여간 반가울 수가 없다. 얼마 전 동아일보 8월 21일자에 한묵과 백영수, 두 대가의 전시 소식이 실렸다. 올겨울을 기다리게 하는 설렘을 느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미술가를 어두운 밀실이나 골방에서 고뇌하는, 세상과는 단절되어 자기만의 세계를 좇는 유형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일반인에게 예술가의 모습은 빈센트 반 고흐처럼 보통의 사람과는 다른 정신세계를 가진 인물로 비친다.

현대미술이 난해하다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미술을 전공하는 이들은 대학 시절부터 현실을 반영하고 대중과 소통하도록 끊임없이 요구받는다. 오히려 이런 이유로 대중과 소통하는 법을 더욱 연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미술가도 나와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작품에 현실을 반영하는 데 있어 우선 필요한 점은 세상의 이모저모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두 번째는 세상사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비판 능력이다. 이때 제일 먼저 찾게 되는 매체는 역시 아침마다 배달되는 신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현실을 이해하는 데 대중매체는 중요한 소통의 창구가 된다. 특히 신문은 정보를 즉자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요구하지 않고, 사색하고 해석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준다. 내가 즐겨 찾는 이유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이지만 신체의 오감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할 때가 많다. 독서를 하다가 잠시 생각에 잠기듯이 신문은 독해하는 중간중간 생각할 여유를 준다. 이러한 여유 속에서 현실을 이해하고 해석한다. 때로는 이런 점이 내 작품의 중요한 영감이 된다.

실제로 신문이라는 매체를 적극 활용해 작품을 만든 적이 있다. 지면 신문의 형식으로 사실보도와 허위보도의 기사를 섞어 배포했다. 신문의 정보 파급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험하는 작품이었다.

신문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가장 개인적인 수단 중 하나이다. 도심 한복판의 전광판을 통해 보는 뉴스와 달리 사람들은 신문을 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읽는다. 신문은 함께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극히 사적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이 때문에 신문은 다른 매체와 달리 더욱 엄격한 잣대의 눈으로 평가되는 심판대에 오른다. 내용을 독해하고 판단할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기에 가능하다.

반대로 이런 이유로 신문은 가장 객관적인 정보매체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사실성, 객관성과 공정성이 전제돼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정보를 빨리 알아봐야 할 때는 인터넷을 찾지만 정확하게 알아봐야 할 때는 신문을 참고한다.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현실을 해석해야 작품의 통찰력이 빛난다.

미술가에게 신문은 가공되기 전의 원재료 같은 가치를 지닌다. 미술가의 작품이 자신의 생각과 개성을 드러내는 틀이라면 신문은 이런 생각과 개성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원료를 제공한다. 나는 아침마다 신문에서 원료를 찾는다. 그리고 어떻게 가공할까 고민한다. 아침마다 배달되는 신문에서 더욱 많은 정보와 쟁점이 넘쳐나기를 기대하면서.

지세민 ‘창조적 소수’ 아트스튜디오 대표
#나의 NIE#창작#지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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