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드림… 진로교육이 미래다]<1>‘범생이 진로’ 걷다가 직업 바꾼 20, 30대 3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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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는대로 인생고속도로만 달리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 눈앞엔 고속도로만 보인다. 남보다 빨리 이 길로 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앞만 보고 달린다. 브레이크 없이 달리고 달린다. 부산에 발을 딛는 순간에서야 깨닫는다. 아, 여기가 아니구나….

국내 초중고교 학생 중에서 상당수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진로와 관련해서 말이다. 자신의 앞길을 부모 및 교사와 상의하며 선택하기보다는 방향과 목적지를 모르고 무작정 출발하는 식. 후회를 덜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고속도로만 있는 줄 알았다


세 명의 젊은이가 있다. 공통점이 있다. 사회생활을 이미 5년 이상 했어야 할 나이. 하지만 지금의 일을 시작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백수로 지냈다는 얘기는 아니다. 모두 학창 시절 모범생 소리를 들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안정적인 직장에 눌러 앉을 기회도 있었다.

이보인 씨(33). 외고를 나와 연세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전형적인 ‘엄친아’였다. 대학 재학 중에는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졸업 후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했다.

중고교 시절에는 수학을 좋아했다. 그럼에도 과학고가 아닌 외고에 진학한 데는 누나의 영향이 컸다. 외고에 다니는 누나를 따라가는 길이 가장 좋은 줄 알았다. 점수에 맞춰 일본어과를 갔다. 외국어를 싫어했기에 난생 처음 시험지가 까맣게 보이는 경험을 했다. 당시 그는 광고인이나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 광고 종사자가 쓴 책을 보니 멋있어서, 회사원인 아버지가 좋아 보여서.

김은지 씨(27)와 윤채우리 씨(28)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적성에 대한 고민 없이 진로를 결정했다.

김 씨의 선택에는 가족의 영향이 컸다. “너는 공부를 잘하니 의사가 돼라”는 말을 들으면서 크다 보니 그게 자신의 길인 줄 알았다. TV 속 하얀 가운 입은 의사의 모습이 근사해 보였다.

수학과 과학에 별로 흥미가 없었지만 이과를 선택했다. 의대에 가려 했지만 시험에서 원하는 만큼 성적이 안 나왔다. 서강대 화학공학과에 갔다. 공대에 가면 취업이 잘된다고 담임선생님이 설득했다.

윤 씨는 어릴 때부터 방송반 활동을 했지만 사학과에 갔다. 역시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고교 2, 3학년 담임이 모두 역사 담당이었다. 이들은 이과면 약사, 문과면 교사나 사서를 하라고 했다. 안정적인 직업이 최고라고 했다.

모의고사 성적이 나오면 교사들은 성적에 맞는 대학 및 학과가 나열된 배치표를 쫙 펼쳤다. 가능하면 학생이 재수하지 않도록 지도하는 듯했다. 학생들도 점수에 맞춰 지원하는 게 정답인 줄만 알았다.

○ 돌고 돌아서 자신의 길을 찾아

입학의 기쁨도 잠시, 이들의 고민은 1학년 때부터 시작됐다. 이 씨는 복식부기와 대차대조표를 들여다보는 자신의 모습에 답답해졌다. 군 제대 뒤 창업을 선택했다. 한창 벤처 붐이 일었을 때였다.

학교를 휴학하고 노래방 화면에 광고를 넣는 사업을 시작했다. 결과는 실패.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자금만 날렸다. 이후 고교 시절 꿈꿨던 광고 일이 생각나 광고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막상 부딪쳐 보니 밤낮도 없는 고된 일. 결국 적성과 무관한 통신 관련 대기업에 입사했다.

김 씨도 의대 편입 준비를 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국제워크캠프에 참가하고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어느새 4학년. “불안감에 쫓겨 주변 친구들처럼 취업준비를 했죠.” 대기업에 입사했다.

취직하고 얼마 뒤 고민이 다시 시작됐다.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마음속 답은 항상 ‘노(No)’였다. 미련 없이 사직서를 쓰고, 사업을 시작했다. 꽤 잘됐다. 하지만 10년 뒤를 내다보니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에 휩쓸려 시작한 일이어서 몸도, 마음도 지쳤다. 깨끗하게 접었다.

막연히 방송인을 꿈꾸던 윤 씨는 한글연구동아리, 국제교류박람회 기획, 베이징 올림픽 자원봉사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잘 알게 됐다. 현장 한가운데서 활동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자신에게 가장 맞았다. 2009년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로 학사 편입했다. 다양한 학문을 접하고 더 많은 활동을 하면 길이 보일 것 같아서였다.

이들은 지금에서야 자기 길을 찾았다. 이 씨는 지난해 6월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SK행복나눔재단에 입사했다. 새롭게 눈을 뜬 사회 공헌 관련 공부를 위해 미국 케네디스쿨에 유학을 다녀온 뒤였다. 처자식이 있는 그로서는 쉽지 않았다.

김 씨는 관광 분야에서 일할 구상을 하면서 집필 활동을 한다. 자신의 경험을 사회 후배에게 들려주고 공유하는 지식 나눔 활동에도 열심이다.

윤 씨는 언론사 여러 곳의 문을 두드린 끝에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한다. 테니스 중계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베이징 올림픽 현장에서 통역으로 인연을 맺었던 핸드볼 관계자들과의 끈끈한 인연도 도움이 됐다.

이들은 한결같이 “학창 시절 진로 교육을 제대로 받았더라면 이렇게 먼 길을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리나라 학교에선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으로만 나눠 진로를 결정짓잖아요. 학생의 개성과 능력, 다양성을 존중하는 진로 교육만 있다면 좀 더 일찍, 다양한 꿈들을 활짝 펼칠 수 있을 텐데요.”(김 씨)

인생 선배로서 어린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을까. 이들은 자기 자신부터 진지하게 바라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현장을 찾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라고 당부했다. 김 씨는 말했다. “내가 겪은 만큼 꿈꾸는 시야가 넓어진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진로#직업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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