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흉포화하는데… 성범죄 구속률 37% → 14%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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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속 수사 원칙 영향

올해 5월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서 헤어진 애인을 감금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붙잡혔던 40대 남성이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풀려나자마자 옛 애인을 다시 찾아가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해마다 성범죄를 신고하는 건수는 늘고 있지만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성범죄자 구속률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전체 성범죄 중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성범죄자 구속률’은 2003년 37%에서 2011년 14%로 8년 사이 23%포인트 줄었다. 같은 기간 성범죄 접수는 2003년 1만1107건에서 2011년에는 1만9830건으로 78% 늘었다.

2005년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이후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불구속 수사 원칙’이 강조되면서 영장 기각 비율이 높아진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법원은 재범 가능성과 도주 우려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을 선별적으로 발부해 왔다. 성범죄자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여 구속영장을 발부한 비율은 2003년 91.3%에서 지난해에는 79.8% 수준으로 낮아졌다. 법원은 “증거인멸 우려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내린 결론일 뿐”이라고 밝혔다.

성범죄자 구속률이 낮아진 것은 검찰이 까다로워진 법원의 영장 발부 기준을 감안해 영장 청구를 적게 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검찰은 2003년 전체 성범죄 사건 1만1107건 중 40%에 달하는 4511건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지난해에는 17%만 청구했다. 검찰 측은 “경미한 성추행 사건에 대한 신고가 늘면서 구속영장 청구 비율이 낮아졌고, 법원의 영장 발부 기준이 엄격해져 처음부터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해 영장을 청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검찰의 소극적인 영장청구와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 등 모호한 이유를 앞세운 법원의 기각으로 지난해 기준으로 성범죄자 10명 중 2명가량만 구속수사를 받았다.

하지만 성범죄의 경우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성이 피해자인 만큼 불구속 수사 원칙만 고집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피의자들이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를 찾아가 보복하거나 ‘고소를 취소하라’며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내부에서도 이런 추세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직 검사장인 석동현 서울동부지검장은 13일 법률신문 기고에서 성범죄를 포함한 전체 범죄의 구속률이 지난해 1.67%까지 줄어든 것과 관련해 “살인과 성폭력 등 범죄가 날로 흉포해지는데 구속률이 0%를 향해 가는 현실은 기형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성범죄#구속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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