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진우]“자기소개서 대필 안하길 잘했네요” 고3 어머니의 e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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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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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우 교육복지부 기자
신진우 교육복지부 기자
“자기소개서 버전 45개, 인력 투입 일수 딱 한 달. 8월 18일 5시 58분. 최종 제출을 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얼마 전 기자에게 도착한 e메일은 이렇게 시작됐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사는, 고3 수험생을 둔 어머니가 보냈다. 아들의 자기소개서를 만들려고 가족이 함께 노력하는 내용을 담았다.

“아이가 독서실에서 귀가하는 밤 11시부터 가족회의가 시작됐습니다. 때론 의미 있는 단어의 향연으로 웃고, 이견으로 삐친 적도 있었죠. 솔직히 자기소개서가 꼬여 갈 땐 대행업체 사이트를 보며 유혹에 흔들린 적도 있었어요.”

잠시 흔들렸지만 돈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힘든 과정을 거쳐 자기소개서를 완성하고 나니 모두가 뿌듯했다고 전했다. 아들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식구 사이의 정을 돈독하게 쌓는 계기가 됐다는 말이었다. 최선을 다한 아들이 자랑스럽고 고맙다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 줄은 이랬다.

“돈으로 포장된 자기소개서와 정성과 진실이 담긴 자기소개서를 대학 입학처에서 구분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맞춤형 대필까지 등장하는 등 대학 입시에서 자기소개서 대필 문제가 심각하다는 기사(본보 15일자 A10면 보도)가 처음 나간 뒤 기자에게 이런 e메일이 여러 통 쌓였다.

지방에 사는 수험생은 “서울에선 다 하는데 나만 안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어느 학부모는 “정부, 대학은 대체 뭐하고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논술 첨삭하던 학원 강사는 물론이고 대학생까지 돈을 노리고 뛰어들 만큼 대필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하지만 원칙대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자기소개서를 직접 쓰는 수험생이 적지 않다. 쓸 때는 귀찮고 힘들지만 완성하고 나면 그만큼 뿌듯하니까.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처음으로 내 자신을 찬찬히 돌아봤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반성했다.”(수험생 장모 군) “3주 동안 밤을 새우며 쓰고 고치다 보니 작문 능력이 향상된 것 같다. 다가올 논술 시험에 자신감도 생겼다.”(수험생 심모 양)

대필은 그 자체로 심각한 범죄나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다수의, 선량한 학생과 학부모까지 흔들릴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엄격히 규제할 필요가 있다. 자기소개서를 대필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 학생은 대학 논문은 물론이거니와 취업용 자기소개서까지 대필하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취재 현장에서 만난 수험생은 기자에게 “(대필 관련) 기사를 써 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는 정성껏 만든 자기소개서를 수줍은 표정으로 보여 줬다. 고맙다는 말은 오히려 기자가 학생에게 하고 싶다. 유혹을 뿌리치고 양심이란 기둥을 잘 지켜 줘서.

신진우 교육복지부 기자 niceshin@donga.com
#기자의 눈#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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