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종합병원 구매 사기, 건보공단은 눈감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7일 03시 00분


대형 종합병원들이 심혈관용 스텐트 등 의료기기 구매 과정에서 업체로부터 수십억 원의 리베이트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유명 병원과 의사들이 대거 연루돼 의료계의 리베이트 관행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준다. 병원들은 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데 그치지 않고 의료기기 가격을 부풀려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약 20억 원의 보험급여를 타내 나눠 먹었다. 일종의 사기다.

의사들이 업체가 준 ‘뒷돈’의 분배 문제를 놓고 주먹질을 벌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병원들이 실수로 ‘리베이트 이면계약서’를 통째로 검찰로 넘겨주는 바람에 검은돈 주고받기의 전모가 밝혀졌다. 의료계 리베이트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병원을 향한 의약품·의료기기 업자의 치열한 경쟁 탓도 있지만 리베이트를 ‘검은돈’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의료계의 낡은 인식이 중요한 이유다. 의료계에서 “리베이트는 시장경제 어느 부문에나 있는 거래의 형태”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2000년 이후 의료기기 유통시장에서 병원에 뿌려진 돈은 수백억 원대로 추정된다. 정부가 리베이트를 주는 측과 함께 받는 사람까지 처벌하는 쌍벌제를 만든 것이 불과 2년 전이다. 검찰은 이번에 업체 대표와 대형병원 행정부원장 등 15명을 의료기기법 및 의료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국민이 납부한 건강보험료로 조성되는 건강보험 재정에 손댄 범죄에 대해서는 보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최근 미국 정부는 성인용 항우울제를 청소년에게도 처방할 수 있도록 광고하고 의사들에게 불법 마케팅을 벌인 혐의로 영국계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 벌금(10억 달러)과 합의금(20억 달러)을 물렸다. 미국 역사상 제약회사에 물린 최대의 벌금과 합의금이다. GSK는 자사 제품에 대한 처방전을 써주는 대가로 의사들에게 콜로라도 스키여행, 유럽 꿩 사냥을 보내주고 마돈나의 공연 티켓 등을 나눠주었다. 국내 의사들에겐 일상적 로비 행태인데도 미국에선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의 합의금을 물렸다. 그런데도 이 처벌만으로는 약하다며 제약사 임원에 대한 형사처벌이 모색되고 있다.

의료기기 실거래가를 따져보지 않고 보험급여를 지급한 건보공단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건보공단이 까막눈이었는지, 알고도 묵인했는지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종합병원#구매 사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