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연평해전 발발 10년… 6용사 유족들 가슴에 담아뒀던 말 꺼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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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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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께 묻고 싶습니다 기념식에 왜 한번도 참석하지 않으셨는지…
‘종북의원’에도 묻습니다 나라 지키다 산화한 이들에 대한 입장 뭔지…

제2연평해전 전사자 유족들이 4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해군호텔에 모였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제2연평해전 전사자 유족들이 4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해군호텔에 모였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 서해 연평도 서쪽 해상에서 경계 순찰 중이던 참수리급(170t) 해군고속정 357호는 북한 경비정의 선제 기습포격을 받았다.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한 사투였다. 하지만 남북 화해무드와 월드컵 열기에 묻혀 전투는 곧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제57회 현충일 추념식 참석차 모인 유가족 9명을 4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해군호텔에서 만났다. 한 중사 가족은 개인사정으로 불참했다. 》
○ 여전히 ‘잊혀진 전투’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사령부에 설치된 제2연평해전 전적비. 원대연 기자yeon72@donga.com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사령부에 설치된 제2연평해전 전적비. 원대연 기자yeon72@donga.com
현 정부 출범 이후 2008년부터 제2연평해전 추모식이 국가 차원의 행사로 승격되고 공무상 사망으로 분류됐던 6용사는 전사자로 명예를 되찾았다. 올해는 13∼15일 6용사의 이름을 딴 해군 유도탄고속함(PKG) 6정이 참가하는 합동해상훈련도 실시된다. 29일에는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유족 및 부상자, 선후배 장병과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10주년 제2연평해전 기념식이 열릴 예정이다. 7월 중순에는 제작비 약 60억 원 규모의 3차원(3D) 입체영화 ‘연평해전’(가제)이 내년 3월 개봉을 목표로 촬영을 시작하는 등 10주기를 기념하는 행사들이 잇따라 열린다.

하지만 유족들은 “제2연평해전은 여전히 잊혀진 전투”라고 말했다. 서 중사의 어머니 김정숙 씨(57)는 “이명박 대통령은 제2연평해전 기념식에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다”며 “아들의 죽음이 홀대받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이 대통령은 “제2연평해전 전사자도 천안함과 같은 수준으로 예우하라”고 했지만 국방부는 다른 전사자들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10주기를 앞두고 사이버 추모공간이 폐쇄된 것도 유족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추모행사를 주관하는 국가보훈처는 ‘제2연평해전 사이버추모관’을 2008년 개설해 매년 6월에만 한시적으로 운영했지만 올해는 잠정폐쇄했다.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희생된 장병을 기리는 사이버 추모관이 상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보훈처 관계자는 “월 50만 원 정도 유지·보수비용이 드는 데다 링크를 통해 보훈처 홈페이지가 해킹당할 수도 있어 닫아뒀다”고 해명했다.

○ “종북세력에 가슴 무너져”

유족들은 최근 국회에 입성한 이석기,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과 탈북자들을 ‘변절자’로 불러 구설에 오른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을 성토했다. 제2연평해전 이후 안보 관련 집회의 단골 연사가 된 황 중사의 아버지 황은태 씨(65)는 “나라를 지키는 데 자식을 바친 부모들에게 과연 그들이 무슨 할 말이 있을지 궁금하다”며 “전사자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밝혀보라고 하고 싶다”고 했다. 조 중사의 아버지 조상근 씨(72)도 “그런 사람들이 뉴스에 나오는 걸 보면서 유족들은 또 한 번 죽는다”며 “자식을 떠나보낸 사람들을 고문하는 격”이라고 했다. 윤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 씨(70)는 “‘반공교육’이 사라지고 안보교육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게 하고 바른 국가관을 가르치는 것은 학교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 “그래도 아들의 희생에 자부심”

10년 동안 자식 잃은 아픔을 삭이느라 건강을 잃은 부모들도 많았다. 박 병장의 어머니 이경자 씨(56)는 척추협착증으로 거동이 불편해 4일 마련된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 아들 생각이 날 때마다 술로 마음을 달랬다는 조상근 씨는 간경화 치료를 받고 있다. 황 씨 부부는 지금도 경기 남양주시에 아들의 유품을 가져다 꾸민 컨테이너 기념관에 매주 들른다고 했다.

몸은 상했지만 자식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었다는 자부심과 아들을 기억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믿음은 이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었다. 윤 소령의 어머니 황덕희 씨(66)는 가방에 간직하던 쪽지 하나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시가 적혀 있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니?/이 봄날 차거운(차가운) 바람 맞으며/진달래꽃도 피어나고/봄비 내리는 너를 만나러/아카시아꽃도 피었더라/너는 지금 어디에 있니?/봄날이 지나/너는/뜨거운 가슴으로/대한민국을 품었니./너는 지금 어디에 있니? -영하에게 2012년 5월에.’

“지난주 대전현충원에 갔더니 이 시가 묘비 앞에 놓여 있었어요. 비에 잔뜩 젖어 있어서 제가 새로 타이핑해서 갖고 다녀요. 유족 모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우리 자식들을 기억해주는 분들 덕분에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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