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김충선 장군 ‘한일 평화메시지’ 420년 만에 꽃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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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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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관 한달 달성 한일우호관에 日관광객 발길 이어져

10일 한일우호관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투호놀이를 하며 한국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노인호 기자 inho@donga.com
10일 한일우호관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투호놀이를 하며 한국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노인호 기자 inho@donga.com
“한일우호관이 두 나라의 우정과 미래를 위한 가교가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일본 자유민주당 소속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73·9선) 중의원은 10일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한일우호관을 찾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날마다 일본 국기를 게양할 수 있는 곳은 일본대사관과 한일우호관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곳이 양국 우호관계의 작은 상징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20년 전 모하당 김충선(慕夏堂 金忠善·1571∼1642) 장군이 던진 평화메시지가 한일우호관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지난달 3일 개관한 한일우호관에는 이날 300여 명의 일본인 관광객이 찾았다. 이원섭 문화관광해설사(52·여)는 “우호관이 문을 연 뒤 지금까지 일본인 관광객 500여 명이 찾았는데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4198m²(약 1270평)의 용지에 50억 원을 들여 2층 건물로 지은 우호관 1층에서는 김 장군의 밀랍인형과 생애, 한일 교류사를 볼 수 있다. 2층에는 일본 문화를 보여주는 생활용품을 전시하고 두 나라의 전통놀이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명절을 제외하고 오전 10시∼오후 5시 문을 연다. 김충선의 위패가 있는 녹동서원에는 지금까지 관광객 1만여 명이 찾았다. 이 중 2000여 명은 일본인이었다.

일본인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것은 김충선이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군 선봉장으로 참전했다가 조선에 귀순했기 때문. 그는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조선을 침공한 명분 없는 전쟁”이라며 부하 3000여 명과 함께 투항했다. 이후 일본과의 전쟁에서 8차례 공을 세워 조정으로부터 ‘김해 김씨’와 ‘충선’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는 이곳에 살면서 녹동서원을 세우고 유학을 공부했다.

김충선의 12대 후손인 김상보 한일우호관 건립추진위원장(64)은 “할아버지께서 몸소 보여준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 예의와 충효사상을 잘 계승해 나가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김문오 달성군수는 “한일우호관이 한국과 일본의 문화관광이 꽃피는 공간이 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노인호 기자 inho@donga.com
#대구#달성군#한일우호관#김충선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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