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백일해’… 전염병이 학생 건강 위협하는데 전국 학교 35% 보건교사조차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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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전남은 절반에 육박
보건과목 선택도 7.8% 그쳐

3월 초 학생 180여 명이 다니는 강원도의 한 공립고교에서 2학년생 A 군이 복통을 호소하며 교무실을 찾았다. 담임교사는 보건교육 담당 체육교사에게 학생을 봐달라고 부탁했지만 보건교사 자격증이 없는 체육교사는 “왜 아픈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담임교사는 “의료전문가가 학교에 없다 보니 위급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다”며 “단순 복통이었지만 큰 병이었다면 대처가 안 돼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비슷한 때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서도 3학년생 B 군이 배가 아프다며 교무실을 찾았다. 담임교사는 새 학기부터 꾀병 부리는 학생의 ‘군기’를 잡아야 한다며 병원에 보내지 않았다. 옆에 있던 이모 보건교사는 학생의 상태를 보고 급성충수염(맹장염)이 의심된다며 담임교사를 설득해 병원으로 옮겼다. B 군은 보건교사의 판단으로 제때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환자가 자주 발생하는 학교에 의료 전문 인력이 없어 학생의 응급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등 학교 보건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18일 경기 고양외고에서 결핵으로 학생 4명이 격리되고 120명이 잠복환자로 판정받은 데 이어 같은 달 26일 전남 영암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36명이 백일해를 앓는 등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보건 인력은 충원되지 않고 있다. 스트레스가 늘면서 학내 질병은 늘고 있지만 학교 보건은 여전히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4일 교육기술과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일선 학교 보건교사 배치율은 65.4%였다. 2006년 67.1%에 비해 오히려 2%가량 감소했다. 학교 10곳 중 3곳 이상에는 보건교사가 없는 셈이다.

특히 도시와 지방 간 격차가 심각했다. 서울 보건교사 배치율은 95.7%였지만 제주는 45.1%, 강원 전남은 각각 49.2%에 불과했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국가직 교육공무원 정원과 예산이 제한되다 보니 주요 과목이 아닌 보건교사를 늘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보건 교육도 등한시되고 있다. 학교보건법 및 교육과학기술부 고시에 따르면 2009년 3월 1일부터 초등학교 5, 6학년은 17시간 이상의 보건교육을 받고 중고등학생도 2010년부터 재량시간에 선택과목으로 보건교육을 배운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보건교사는 “각종 법령에는 일선 학교에서 일정 시간 보건교육을 하도록 돼 있지만 실상은 재량시간에 형식적으로 수업이 이뤄져 내실이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 학교에서는 올해 보건교육이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전국 5441개교 중고등학교 중 보건교육을 선택과목으로 선택한 비율은 7.8%에 불과하다.

이와 달리 일본은 학교교육법에 따라 2002년부터 보건교육이 체육교과와 함께 정규 교과 대접을 받으며 일선 학교에서 전면 실시되고 있다. 고등학교 보건교사 배치율도 90.9%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인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네덜란드 핀란드 등도 학교보건교육을 선택과목이 아닌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한미란 보건교사회 회장은 “도서 벽지 지역에는 보건교사가 부족해 2009년 신종 플루가 확산됐을 때 대책 회의에 미술교사가 참여한 경우도 있었다”며 “그러다 보니 한국 학생들은 심각한 전염병이나 질병에 걸려도 무턱대고 참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전염병#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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